[극일! 기술독립]반도체는 우리경제 힘줄…“인재 유치 힘 실어야”

“국산화 단기간 어렵지만 가야 할 길”…이구동성
“반도체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 돌아보자” 목소리도
이공계 인재 의대에만 쏠리는 현상에도 경종 울려야
반도체 ‘밸류체인’ 고려하면 日 ‘몽니’ 지탄받을 것

그래픽=박혜수 기자

일본의 노골적인 경제 보복 조치 시작점이 반도체 소재였다는 점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해당 소재의 국산화 가능성과 현시점에서 일본 수입 물량을 어느 정도 비축하고 있느냐에 대한 집중 관심을 받으면서 시시각각 정부와 협력업체와 소통 중이다.

결론적으로 업계 관계자들은 “당장 전면 국산화는 어렵다”고 입을 모으면서도 “대일 의존도를 낮추고 국산화율을 높이는 등 소재 다각화를 해야 한다는 지적에는 이견이 없다”고 반응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현실과 이상이 맞부딪히고 있는 상황”이라며 “일본의 수출 규제 장기화가 예상되지만 우선은 풀려야 하는 게 최선의 시나리오”라고 전했다. 이참에 반도체 산업 전반의 체질 개선을 위한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포함한 일부 기업들은 최근 6개월치 재고를 한꺼번에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기업 관계자는 “최대한 재고를 쌓아두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며 “관련 품목의 국산화와 거래처 다변화도 시도하고 있지만 단기간에 성과가 나오지는 않기 때문에 최대한 원만하게 사태가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직격탄이 된 핵심 3개 소재만 놓고 보면 일본 의존도는 그나마 하강 곡선을 그렸다. 한국무역협회가 최근 내놓은 ‘일본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 관련 통계’를 보면 에칭가스(고순도 불화수소)·포토리지스트(반도체 감광액)·플루오린 폴리이미드(강화필름) 3개 품목의 대일 수출 의존도는 각각 91.9%, 43.9%, 93.7%로 나타났다. 포토리지스트와 플루오린 폴리이미디드는 여전히 높지만 에칭가스의 대일 수출 의존도는 2010년 72.2%에서 2019년 1~5월까지 43.9%로 낮아졌다.

관련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를 통해 정부와 범시민적으로 반도체 중요성을 새삼 인식한 게 그나마 얻은 최소한의 소득으로 꼽는다. 한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가 국가 전체 경제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부터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번에 한층 더 건전한 논의가 이어지는 전화위복의 사례가 됐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내놨다.

이번 사태가 정치권에서 촉발한 ‘정치문제’인 만큼 청와대를 비롯해 산업통상자원부를 향한 감시와 비판의 눈초리도 한층 높아졌다. 이에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5일 1년 안에 20대 품목의 안정 공급과 80대 품목의 5년 내 공급 안정화를 대책으로 내걸었다. 특히 앞으로 7년간 소재·부품·장비 연구개발(R&D)에 7조8000억원을 투자하며 100대 핵심 전략품목을 1년~5년내 국내에서 공급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일본이 수출 규제에 착수한 에칭가스와 포토리지스트 등 반도체 핵심소재는 미국, 중국, 유럽연합(EU) 등 신속하게 수입국 확보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했다. 정부가 올해 초 국가적 필요성을 인정해 특별 부지 물량을 허용한 SK하이닉스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와 같은 적극적인 정책 지원에도 관심이 쏠린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불화수소 등 반도체 소재의 국산화와 관련해 “만들 수는 있겠지만 품질의 문제”라고 하자 곧바로 여론에 힘이 실려 정부가 중소기업 지원과 육성에 시선을 돌린 것도 마찬가지다. 관련 소재를 생산하는 국내 기업 동진쎄미켐, 후성, 솔브레인 등도 이러한 국가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이고 있다.

이공계 인재가 의대에 집중되는 것에도 경종을 울리는 목소리가 관련 학계에도 퍼지고 있다. 그간 반도체협회 등 산업계를 중심으로 이런 요구가 끊임없이 나왔지만 지금처럼 일본이 국내 반도체 소재를 콕 집어 쥐고 흔들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최근 서울대 공대가 2020학년도 1학기 개설을 목표로 ‘인공지능형 시스템반도체 연합전공’ 신설을 추진하고 있는 것에도 많은 격려가 뒤따를 전망이다. 이는 최근 인재난을 겪고 있는 시스템 반도체와 비메모리 반도체 전문 인력 양성을 목표로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겠다는 청사진인데 서울대가 먼저 움직이면 사회 전체에 반도체 인재 육성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질 것이란 관측이다.

일본 출장길에서 돌아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비상경영체제’와 이를 통한 전 세계의 국내 반도체 시장 주목도 ‘대일 메시지’로 기능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중론이다. 이재용 부회장과 최태원 회장 모두 이구동성으로 “위기 극복”을 언급하며 정면 돌파를 시사했다. 여기에 SK하이닉스는 일본 ‘몽니’에 대응책으로 ‘감산’을 발표했다. 삼성전자는 아직 “인위적 감산은 없다”고 가능성만 열어뒀지만 자연 감산이란 카드는 얼마든 유효하다.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 1위는 삼성전자고 2위는 SK하이닉인 만큼 일본이 일으킨 문제는 비단 국내에만 머무는 일이 아니다.

두 기업의 세계적인 위상에 따라 국제적인 움직임도 일부 감지됐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는 일본 수출 규제에 대한 대응팀을 꾸리고 분쟁이 확대하면 국제무역 원칙에 따라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마이크 루소 SEMI 부사장은 지난달 30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일본과 한국의 최근 무역 갈등에 대한 완화 촉구’라는 제목의 글을 실어 이같이 주장했다.

SEMI는 전 세계 2000여개 반도체 업체로 구성된 국제 산업협회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포함해 인텔과 퀄컴 등 일본의 수출규제 품목을 생산하는 소재 기업들도 포함돼 있다. 반도체 생산 구조에서 일본의 일방적인 수출 규제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피해 본다는 ‘밸류체인’에 따라 이러한 국제적인 여론은 사태가 장기화할수록 높아질 전망이다.

임정혁 기자 d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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