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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길 잃은 보수표심 결집 꾀한다

[대선 인물파일]홍준표, 길 잃은 보수표심 결집 꾀한다

등록 2017.04.07 09:08

이창희

  기자

거칠 것 없는 ‘스트롱맨’, ‘샤이 보수’에 손짓친박계 껴안기·유승민 연대 사이서 ‘딜레마’막말로 흥했으나 대선정국서 ‘부메랑’ 우려도

편집자주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에 따라 오는 5월9일 실시되는 조기 대선을 앞두고 원내 5당이 저마다의 방법으로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서 문재인 후보, 자유한국당에서 홍준표 후보, 국민의당에서 안철수 후보, 바른정당에서 유승민 후보, 정의당에서 심상정 후보가 각각 본선행 티켓을 손에 넣었다. 한 달 여 앞으로 다가온 이번 대선은 이렇게 5자 구도로 출발하게 됐다. 각 후보들이 걸어온 길과 대선에 맞춰 내놓은 공약, 강점과 약점을 조명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사진=자유한국당 제공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사진=자유한국당 제공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에 이은 파면으로 구(舊) 여권은 폭풍이 훑고 지나간 난파선 신세다. 지지자들은 등을 돌렸고 대안을 찾지 못해 헤매고 있다. 이 같은 풍전등화의 위기 앞에 홀연히 나타난 이가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다. 그는 정계 입문 20년 만에 ‘강한 대통령’을 기치로 대선에 도전장을 던졌다. 표현의 자유로움과 막말 사이를 아슬하게 오가는 홍 후보의 행보에 눈길이 집중된다.

◇홍준표는 누구인가
홍 후보는 1954년 경남 창녕에서 현대조선소 야간 경비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좀처럼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집안에서 자란 탓에 대구와 경남 합천, 울산 등지를 계속해서 옮겨 다녔다. 영남중·고교를 다녔지만 대구에 있는 공장에서 일하는 누나의 월세방에서 고학을 해야 했다.

대학 진학 과정에서 의대를 희망했다가 가난한 집안 사정을 고려해 육군사관학교를 지원했다. 하지만 당시 아버지가 누명을 쓰는 모습에 생각을 바꿔 검사가 되기 위해 1972년 고려대 법대에 진학한다.

대학 시절 괴짜로 불릴 만큼 특이한 면모를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 농담을 생활화했으며, 방송사 개그맨 시험에 응시하기도 했다. 이는 홍 후보 스스로 지금까지도 ‘격식 없는’ 인간관계를 추구하는 배경이 된 것으로 풀이된다.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중 지금의 아내인 이순삼씨를 만났다. 처가의 반대에 부딪혔으나 좌절하지 않고 1982년 시험에 합격한 뒤 곧바로 결혼했다.

검사 시절은 홍 후보의 인생을 바꿔놓은 ‘터닝포인트’로 꼽힌다. 청주지검 검사를 시작으로 부산지검 울산지청과 서울지검 남부지청, 광주지검, 서울지검, 법무부 특수법령과를 두루 거쳤다.

배경 없이 ‘맨손’으로 성장한 홍 후보는 5공 비리 관련 노량진 수산시장 사건과 슬롯머신 업계 비호 사건 등 굵직한 사건을 처리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윗선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당시 실세였던 박철언 전 의원을 비롯해 검찰 간부들을 줄줄이 구속시키면서 유명세를 탔다.

특히 당시 큰 인기를 얻은 SBS드라마 ‘모래시계’의 실제 모델로 알려지면서 ‘모래시계 검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다만 검찰 조직 내부에서는 홍 후보를 ‘문제아’로 낙인찍어 배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홍 후보는 1995년 검복을 벗고 정계에 입문했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신한국당과 김대중 총재의 새정치국민회의 양측의 영입 경쟁이 벌어지면서 정치권의 ‘블루칩’으로 떠올랐다. 노무현 의원이 속한 ‘꼬마 민주당’도 영입전에 뛰어들 정도였다.

결국 홍 후보는 신한국당행을 선택했고, 이듬해 15대 총선에서 서울 송파갑에 출마해 압도적인 득표로 당선됐다. 16대부터 18대까지는 야권 지지 성향이 강한 서울 동대문을에서 3선을 지냈다.

하지만 시련도 있었다. 홍 후보는 1999년 선거법 위반으로 벌금형에 처해지면서 의원직을 상실하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현지에서 당시 같은 처지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과 경기지사에서 낙선한 손학규 전 더불어민주당 고문을 만나 정치적 내공을 키웠다.

이후 순탄하게 의정활동을 하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낙선하면서 정치적 위기를 맞은 홍 후보는 같은 해 경남지사 보궐선거에서 당선되면서 화려하게 복귀했다. 2년 뒤인 2014년 지방선거에서는 재선에 성공했다.

경남지사 시절 무상급식 중단과 진주의료원 폐쇄 등 강압적인 조치로 논란을 빚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이슈의 중심에 섰다. 곧이어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대표로부터 1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1심 재판에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 받았다. 하지만 항소를 통해 2심에서 무죄를 받아 대선 가도에 올랐다.

홍 후보는 정치권 입문 초기 ‘저격수’ 역할을 맡은 이래 계속되는 ‘막말’로 여론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번 경선 과정에서도 당내 강성 친박계를 향해 ‘양박(양아치 친박)’이라는 경멸스런 표현을 내뱉었으며,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춘향이로 알고 뽑았더니 향단이었다”고 문제적 발언을 이어갔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겨냥해 “지금 민주당에서 1등 하는 후보는 자기 대장이 뇌물 먹고 자살한 사람”이라며 “노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란 사람이 뇌물 받은 것을 몰랐다면 깜이 안 되는 것이고 알았다면 공범”이라고 말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홍 후보는 이번 대선을 앞두고 다소 ‘어부지리’로 기회를 얻었다는 평가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갖은 논란 끝에 대권 도전을 포기한 데 이어 보수의 희망으로 떠오른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마저 고심 끝에 출마를 고사하면서 홍 후보에게까지 기회가 돌아왔다.

현재 대선레이스가 문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양강 구도로 굳어지는 것은 홍 후보에게는 적신호다. 하지만 홍 후보는 보수 결집을 통해 이를 돌파한다는 의지다. 그는 여전히 이번 대선을 자신과 문 후보의 맞대결이라는 인식을 놓지 않고 있다.

◇홍준표의 사람들

홍 지사는 다른 후보와 달리 캠프 구성이 다소 늦었다. 당의 대선후보로 확정된 후 빠른 속도로 진용을 꾸리기 시작했다.

후보 비서실장으로 경남 창원 마산회원구를 지역구로 하는 윤한홍 의원이 낙점됐다. 그는 지난 2013년부터 3년 동안 경남 행정부지사를 지내는 동안 도지사인 홍 후보를 보좌했다.

경남 마산합포구의 이주영 의원은 대선 기획단장을 맡았고, 부산 남갑의 김정훈 의원은 직능위원장에 임명됐다. 이종혁 전 의원과 강남훈 공보특보도 합류한다.

경선 과정에서 날을 세웠던 친박계와도 손을 잡았다. 강원 춘천의 김진태 의원은 강원 지역 선대위원장을, 김문수 전 경기지사는 대구 선대위원장을 각각 담당하게 됐다.

◇필살기&아킬레스건
홍 후보의 ‘트레이드 마크’는 거침없는 화법으로 꼽힌다. 어떤 상황에서 누구를 만나더라도 자기 할 말은 다 한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논리에만 매달리지 않고 논쟁 자체를 즐기는 타입이다.

중심추를 잃은 보수 진영을 의식한 ‘스트롱맨’ 마케팅 역시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 보수 후보로 떠오른 이들이 맥없이 무너지거나 출마를 포기한 상황에서 강력한 인물론을 자임하는 모양새다.

반면 정치 여정 내내 이어온 화술이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위험이 상존한다. ‘막말’이라는 이미지가 완전히 고착화된 모습이다. 이는 이미 홍 후보의 정체성으로 스며든 만큼 이제 와서 단시간에 개선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자유한국당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도 극복하기 어려운 악재다. 그럼에도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골수층을 달래는 동시에 바른정당과의 연대를 모색해야 하는 딜레마에 봉착한 홍 후보다.

뉴스웨이 이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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