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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백현 기자
등록 :
2016-11-22 08:31

[멈춰버린 한국]‘게이트 정국’에 손 놓은 재계, 새해 준비 ‘올 스톱’

양대 재단에 돈 댄 기업들 가시방석
총수 안위 챙기기에 계획 수립 뒷전
늑장 계획에 협력사·구직자도 혼란
기업 경영 방해 안되도록 수사해야

장충기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사장 검찰 출석. 사진=최신혜 기자 shchoi@newsway.co.kr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 사태에서 비롯된 ‘최순실 게이트’의 여파로 재계 안팎이 혼란스럽다. 특히나 한 해를 결산하고 새해를 시작해야 하는 시기에 게이트 관련 논란이 커지면서 각 기업들은 다음 해에 진행해야 할 각종 사업 관련 계획을 전혀 잡지 못하고 있다.

보통 각 기업들은 10월 중순부터 각 계열사별로 경영 실적에 대한 결산을 단행하고 임원들에 대한 고과를 평가한 뒤 새해 사업에 대한 예산과 집행 계획, 고용 계획 등을 짜서 매년 11월 중에 계획 수립 작업을 마무리한다.

그러나 올해 11월은 상황이 다르다. 현재 각 기업들이 가장 신경 쓰고 있는 부분은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된 검찰 수사의 불똥이 각자의 기업으로 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기업 총수가 박근혜 대통령과 따로 독대를 했거나 전국경제인연합회를 통해 미르재단·K스포츠재단 운영 자금으로 막대한 돈을 낸 기업들은 그야말로 가시방석이 따로 없는 상황이다.

◇총수 안위에 뒷전 밀린 내년 준비 = 현재 재계는 혹시나 생길지 모를 ‘총수 공백 사태’를 우려하고 있다. 지난해 박 대통령과 비공개 독대를 했던 대기업 총수들이 줄줄이 검찰로 소환되는 등 대기업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가속화 단계를 밟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지난 12일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김창근 SK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권오준 포스코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손경식 CJ그룹 회장 등 대기업 총수들을 잇달아 참고인 자격으로 비공개 소환해 조사했다.

여기에 이승철 전경련 상근부회장이 검찰에 소환됐고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 활동 지원 의혹을 받고 있는 박상진 삼성전자 대외협력 담당 사장 겸 대한승마협회 회장과 장충기 삼성 미래전략실 차장 겸 사장은 물론 두 재단에 돈을 댄 기업들의 실무급 임원에 이르기까지 재계 안팎의 여러 사람이 검찰 조사를 받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재계 상황은 그야말로 벌집을 쑤셔놓은 듯 어지럽다. 현재 시점에 각 기업에서 가장 바빠야 하는 부서는 내년 계획을 종합적으로 짜고 관리하는 전략기획이나 총무 관련 부서다. 그러나 올해는 법무팀이 가장 바쁘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현재 각 기업의 법무팀은 총수의 검찰 조사에서부터 향후 수사 확대 시에 일어날 영향까지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기업들과 정부의 돈 거래 과정에서 대가성이 드러날 경우 자칫 총수의 구속 수사도 진행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대안을 찾고 있다.

이렇듯 대부분의 기업들이 내년 계획 수립보다 총수 안위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보니 새해 계획 수립은 밑그림도 그리지 못한 기업들이 많다.

한 대기업의 임원은 “지금 시국 상황에서는 ‘새해 계획’의 ‘ㄱ’자도 입 밖으로 못 꺼낼 판”이라면서 “최순실 게이트 수사가 어느 정도 진척이 되고 각 기업에 직·간접적인 피해가 없다고 판단되면 그 때부터 계획 수립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업의 임원 역시 “새해 계획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투자와 고용에 대한 내용인데 현재 시국 분위기를 감안하자면 총수가 자리를 비운 뒤에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까지도 예상해서 대안을 내야 하는 상황”이라며 “아마도 해를 넘겨서 새해 계획을 내놓을 가능성이 높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커져만 가는 ‘뒷걸음 공포증’ = 각 기업의 윗선에서 내년 사업 계획을 서둘러 내놓지 못하다 보니 실무적으로 일을 해야 하는 현장에서는 속이 타들어가고 있다. 머리가 제 때 돌아가지 못하다 보니 손발이 움직이지 못하는 이치인 셈이다.

상부에서 큰 그림을 먼저 그려야 세부적으로 사업을 어떻게 펼쳐 나갈 것인지 실무선에서 원활하게 일처리를 할 수 있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이것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다보니 혼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한 전자업체의 연구직 직원은 “장기 프로젝트라고 해도 시장 상황에 따라 세부 내용이 바뀌는데다 대체로 모든 활동이 상부 계획대로 움직이는 경향이 많다”며 “윗선에서 방향을 잡아주지 못하면 내년 활동에 차질이 생길 수 있는데 이 우려가 현실이 될까 두렵다”고 말했다.

한 자동차 부품기업의 구매 담당 직원도 “계획된 예산과 구매 계획, 제품 생산 일정에 따라 부품 구매 등을 결정하는데 현재처럼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정해진 것이 없으면 일이 잘 될 리 없다”면서 “늦어진 계획 수립이 내년 실적 부진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고 토로했다.

연말에 이뤄질 각 기업의 인사와 조직 개편 문제도 예측이 불가능한 수준이 됐다. 조기에 인사를 단행한 일부 기업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올해 12월 초에 임원 인사를 예정한 기업들은 나름의 묘책을 모색하기 위해 분주한 모습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각 기업의 인사와 후속 개편 조치가 해를 넘기는 최악의 상황이 나올 가능성을 매우 높게 보고 있다.

재계의 늦어지는 계획 수립에 가슴을 태우는 사람들은 또 있다. 각 기업과 거래 관계에 있는 협력사들과 기업으로의 입사를 원하는 대기업 취업 지망생들이다.

협력사들은 각 기업들이 정하는 계획에 따라 새해 계획을 짜지만 현재로서는 어느 것도 정해진 것이 없기에 혼란스럽기만 하다. 취업 준비생들 역시 각 기업의 투자와 고용 규모가 정해지지 않은 탓에 자신의 진로에 대한 혼란이 깊어질 수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범죄 사실을 밝히기 위한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어디까지나 선이 있어야 한다”면서 “기업의 경영에 방해가 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수사를 진행하는 최소한의 배려가 있어야 하는데 현재 상황에서는 그것이 여의치 않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정백현 기자 andrew.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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