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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래 효성 회장,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기술중시 경영인’

조석래 효성 회장,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기술중시 경영인’

등록 2016.12.29 17:39

수정 2016.12.29 17:54

강길홍

  기자

1982년부터 효성그룹 이끌어조현준에 회장직 넘기고 퇴진공학도 출신으로 기술 강조해차남 조현문 갈등으로 고역도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사진=효성그룹 제공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사진=효성그룹 제공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이 장남 조현준 회장에게 그룹 회장직을 물려주며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회장직에서 사퇴한 조석래 회장은 대표이사직만 유지하며 경영자문 등의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조홍제 효성그룹 창업주의 장남인 조석래 회장은 경기고와 일본 와세다대를 졸업했다. 이후 미국 일리노이 공대 석사 학위를 받은 뒤 박사 과정에 들어갔지만 조홍제 회장의 부름을 받고 회사 경영을 돕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박사 과정을 마치지 못한 조 회장은 지난 2013년 일리노이 공대에서 명예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리노이 공대에서 한국인에게 최초로 수여하는 명예박사 학위였다.

효성그룹에 입사한 조 회장은 효성물산 관리부장, 동양나이론 건설본부장을 거치며 본격적으로 경영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특히 공학도답게 ‘기술 중시’ 경영을 펼쳤다.

1971년에는 국내 민간기업 최초로 ‘기술연구소’를 설립해 신소재·신합섬·석유화학·중전기 등 산업 각 방면에서 신기술 개발을 선도했다. 또한 1973년 동양폴리에스터, 1975년 효성중공업 설립을 주도하며 회사의 규모도 키워나갔다.

1982년부터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회장직에 오르며 효성그룹을 이끌기 시작했다. 이후 30여년간 효성그룹을 글로벌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특히 효성의 캐시카우 역할을 하는 스판덱스는 조석래 회장의 집념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효성은 1990년대 초 국내 최초 독자기술로 스판덱스 개발에 성공했고 2000년대 들어 본격적인 수익사업으로 자리 잡았다. 또한 효성의 타이어코드는 세계 시장점유율 45%를 차지하고 있는 글로벌 1위 제품이다.

외환위기 당시에도 조 회장의 경영 리더십이 빛났다. 당시 효성그룹은 효성T&C, 효성생활산업, 효성중공업, 효성물산 등 4개 주력계열사를 합병했다. 이후 비핵심 계열사 및 사업부문을 매각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해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은 효성은 올 3분기 누적 기준 8013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하며 사상 최대 수익을 냈다. 지난해에도 매출 12조4585억원, 영업이익 9502억원을 기록한 효성은 올해 영업이익 1조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조석래 회장의 ‘기술 중심’ 경영 철학을 기반으로 지속적인 투자와 성장을 이끌어온 결과물이라는 평가다.

효성은 어려운 대내외 경제 환경 속에서도 기술력 확보를 추진하고 있다. 특히 효성은 미래 신성장 동력 창출을 위해 최첨단 신소재 탄소섬유와 폴리케톤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조 회장은 2007년부터 2011년 2월까지 전국 경제인연합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한국 재계의 대표 역할도 했다.

조 회장은 우여곡절도 많이 겪기도 했지만 특히 차남 조현문씨와의 갈등은 고령의 조 회장을 법정에까지 이르게 했다.

조 회장은 조현준·현문·현상 세 아들을 두고 있으면 세 명 모두 차례로 효성그룹에 입사해 경영에 참여했었다.

하지만 조현문씨는 조석래 회장은 물론 다른 형제들과도 갈등을 겪다가 2013년 회사를 나갔다. 이후 조현문씨는 가족들을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뉴스웨이 강길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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