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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스’ 고아성, 세상의 모든 ‘이미례’에게 보내는 응원

[인터뷰] ‘오피스’ 고아성, 세상의 모든 ‘이미례’에게 보내는 응원

등록 2015.09.01 00:00

김재범

  기자

사진 = 최신혜 기자사진 = 최신혜 기자

배우 고아성이 처음 등장했을 때를 떠올려 봤다. 어딘지 모르게 보이시한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영화 ‘괴물’이 고아성을 알린 대표작이다. 그 안에서 고아성은 배우가 아닌 그저 강두(송강호)의 딸 현서였다. 교복이 너무도 잘 어울리던 고아성은 실제론 존재하지도 않는 ‘괴물’과 러닝타임 내내 사투를 벌였다. 연기력 자체의 논의보단 감각이 있었다. 포인트를 잡아 내는 능력이 돋보였다. 또래의 풋풋함도 갖고 있었지만, 완숙된 어떤 느낌도 동시에 뿜어냈다. ‘괴물 같은’ 아역의 등장이다. 그때의 잔상이 워낙 강했는지 모른다. 고아성은 소녀성에서 멈춰 있었다. 대중들의 기억에. 고아성은 이런 느낌을 알고 있었지만 굳이 피하지도 않았다. 그의 출연작을 보면 하나 같이 어느 정도의 소녀성을 담보로 한 배역들이 돋보였다. 그리고 영화 ‘오피스’가 고아성과 만났다. 이제 고아성은 숙녀로 변신했다. 철저하게 소녀성을 배제하고 사회인으로서, 여배우로서의 주목을 받아야 할 타이밍을 안 것 같다. 그리고 올해 고아성은 24세다. 조금은 놀랐다.

워낙 앳된 모습이 트레이드마크가 됐는지도 모른다. 최근 만난 고아성은 아직도 소녀적인 이미지가 강했다. 하늘거리는 흰색 원피스와 긴 생머리의 헤어스타일은 묘한 느낌을 전달해 줬다. 이미 숙녀의 단계로 접어든지 오래인 고아성의 시간은 그가 대중들에게 각인시킨 배우적 혹은 캐릭터적 시간과 약간의 충돌을 하는 듯한 느낌이다. 영화 ‘오피스’는 그런 시점에서 고아성에게 찾아왔다.

사진 = 최신혜 기자사진 = 최신혜 기자

“사실 제가 작품 선택을 하는 데 약간의 패턴을 좀 갖고 있었다고 할까요. ‘설국열차’를 끝내고 좀 인간적이고 따뜻한 느낌의 작품을 만나고 싶었어요. 그때 ‘우아한 거짓말’의 출연 제의를 받고, 고민 없이 출연을 결정했죠. 저한테는 참 좋은 시간이었어요. 하지만 보셔서 아시겠지만 너무 누르고만 있었어요. 그 영화에선(웃음). ‘우아한 거짓말’이 끝날 때쯤은 좀 내지르고 싶은 욕망이 있었죠. 그때 딱 ‘오피스’가 왔어요. 무엇보다 제 나이대의 캐릭터라 마음에도 들었고.”

나이대가 비슷한 캐릭터, 그리고 내지르는 연기의 패턴 욕망 등이 ‘오피스’와 맞닿았다면 조금은 모자란 설명 같았다. 사실 배우란 직업 자체가 존재하지 않은 혹은 존재하지만 경험해 보지 않은 어떤 것을 몸으로 표현해 내야 하는 것 아닌가. ‘오피스’ 속 고아성이 연기한 ‘이미례’는 회사원이다. 그것도 일반적인 회사원이 아닌 ‘인턴’이란 특수한 위치다. 사실 ‘인턴’을 ‘노예 혹은 잉여’로 세상의 잘못된 시선은 말하지 않나.

사진 = 최신혜 기자사진 = 최신혜 기자

“경험해 보지 않아도 그 단어에는 동의하기 힘들어요. 제 주변 친구들 가운데 인턴을 하는 친구들도 있고, 얼마 전까지는 제 친언니도 인턴 생활을 했어요. 물론 지금은 정직원이 됐지만(웃음). 다들 그렇게 미례 같은 취급을 받는다고 생각은 안해요. 물론 ‘오피스’에선 영화적 표현이 필요했기에 격한 장면들이 많지만. 글쎄요. 경험해 보지 않았기에 단정하기는 싫지만 그렇다고 꼭 잉여나 노예란 표현은 너무 슬퍼요.”

그가 말한 슬프다는 단어는 사실 ‘이미례’란 인물에게서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이다. 고아성은 영화를 찍으면서 미례에게서 자신을 본 적이 있다고 한다. 결국 자신의 선택이 작품 선택의 패턴이나 나이대의 캐릭터가 아닌 무의식적인 선택의 결과란 말도 됐다. 약간의 웃음이 섞여 있는 부정이었지만 긍정에 가까운 대답이 돌아왔다.

사진 = 최신혜 기자사진 = 최신혜 기자

“영화에서 가장 화가 나고 슬펐던 장면이 화영(이채은)이 저한테 ‘너무 열심히만 한다’라는 말을 하는 부분이에요. 그 순간 저도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나도 열심히만 했는데’ ‘나한테 열심을 빼면 뭐가 남을까’. 순간 되게 슬퍼졌죠. 그 순간 이후부터 미례에 대한 제 느낌이 정말 확실하게 정립이 된 것 같아요. 착하지만 답답한 사람의 모습이랄까. 착하고 정말 열심히만 하는 사람, 답답할 정도로 성실한데 내세울 게 그것밖에 없는 사람. 저도 그랬던 같아요.”

고아성은 ‘오피스’의 ‘이미례’ 촬영 기간 동안 살아왔다. 이미례로 살면서 열심히만 하는 삶을 살아왔다. 물론 현실 속 고아성의 모습과는 분명히 다르다. 하지만 고아성은 자신의 주변에도 미례와 같은 사람이 있었고, 자신도 미례와 비슷한 부분을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고아성이 생각하는 열심히만 하는 것과 열심히 하면서도 잘하는 것의 차이가 뭘까. 궁금해졌다.

사진 = 최신혜 기자사진 = 최신혜 기자

“당연히 잘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게 너무 슬퍼요. 열심히 하는 것도 분명히 어떤 가치를 인정받아야 하는데. 내가 이런 사실을 아는 게 참 그래요. 열심히만 하는 건 자신의 자존심을 버리고 어떻게 해서든 일의 과정을 따지는 것 같고, 잘하는 건 과정이 어찌됐든 결과로만 보여 지는 것 같고. 참 어려운 말인 것 같아요.”

고아성은 조심스럽게 자신도 ‘이미례’와 같은 경험을 했었던 일화를 전했다. 극중 ‘미례’는 새로운 인턴 ‘신다미’(손수현)에게 자신의 자리를 뺏길 위기에 놓인다. 아니 뺏긴 것이나 다름없다. 배우이기에 이런 경험은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이미 숱하게 경험했던 일이었다. ‘괴물’과 ‘설국열차’ ‘우아한 거짓말’ 그리고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까지. 고아성의 승승장구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사진 = 최신혜 기자사진 = 최신혜 기자

“왜요(웃음). 미례 같은 경험 얼마나 많은데요. 저 잘 알아요. 경쟁에서 밀린다는 느낌. 모르시는 분들이 많은 데, 제가 ‘괴물’부터 시작한 줄 아시는 분들이 많아요. 사실 오디션은 4세때부터 보기 시작했어요. 정식 데뷔는 13세. 하하하. 얼마나 수많은 경쟁에서 밀렸겠어요. 그렇게 밀리고 또 밀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턴 그게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란 것도 알게 됐죠. 현실적으로 인정을 하지 않으면 내가 힘들어지는 것. 그걸 알게 된 나이가 중학교 1~2학년 정도. 이것도 슬프죠. 그 나이에. 하하하.”

가볍지 않은 영화적 분위기와 스토리라인 때문이라도 고아성의 느낌이 무거울 줄 알았다. 하지만 의외로 쾌활하고 또 독특함도 있는 여배우였다. 아버지뻘의 배우 김의성과는 극중에서 최고의 앙숙으로 만났지만 현실에선 ‘친구’로 지낸단 폭탄 고백도 이어졌다. 어느 누구도 쉽게 다가서기 힘든 아우라의 박성웅과는 너무도 편하게 지내는 오빠 동생 사이라고.

사진 = 최신혜 기자사진 = 최신혜 기자

“영화가 무거운 분위기라 그렇지 현장은 정말 즐거웠어요. 의성 선배님과는 정말로 친구처럼 지내요. 하하하. 저한테 ‘친구할래’ 그래서 ‘그래?’ 이랬죠. 되게 좋아하세요. ‘우정해 친구야’ 하하하. 정말 좋은 선배님이세요. 성웅 오빠는 되게 강한 인물을 많이 연기해서 거친 상남자 느낌이 나시는데 실제로 알게 되면 정말 자상한 분이세요. 정말로 제 이상형이세요. 너무 멋진 오빠에요.”

배성우 오대환 류현경 이채은 박정민 손수현 등 함께 한 배우들 모두 고아성과는 너무도 친한 사이가 됐단다. 영화 속에서야 ‘이미례’를 따돌리는 얄미운 직장 동료들이자 한 대 때려주고 싶은 고약한 선배들이지만 현실 속의 이들은 고아성에겐 둘 도 없는 동료들이고 함께 하고 싶은 동료들이다. 만약 실제로 ‘이미례’가 속했던 회사의 부서에서 근무를 해야 한다면 고아성의 선택은 어떤 쪽으로 흐를까.

사진 = 최신혜 기자사진 = 최신혜 기자

“와, 진짜 재미있겠다. 정말 좋아요. 물론 영화 속 배역이 아닌 제가 알고 있는 선배님들의 모습 그대로라면 배우란 직업과 함께 투 잡을 뛰어도 될 정도로 마음에 들어요. 하하하. 다들 각각의 아이덴티티가 너무 강해서 모르시는 분들이 보면 좀 쉽게 다가서기 힘든 선배님들인데 속정은 진짜 깊은 분들이에요. 그 분들이 모여서 회사를 만든다? 제가 저기에서 근무를 해야한다? 저 입사할래요. 하하하. 특히 현경 언니는 너무 친해서, 현경 언니의 남자버전이라면 사귀고 싶은 생각까지 있어요. 하하하.”

그는 마지막으로 영화 ‘오피스’에 대한 애정, 이미례에 대한 애정 그리고 인턴이란 개념의 따뜻한 시선을 전했다. 세상의 시선이 조금은 바뀔 수 있다면 좋겠단다. 물론 쉽게 바뀌기는 힘들지만, ‘오피스’로 인해 단 한 번 만이라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족하단다.

사진 = 최신혜 기자사진 = 최신혜 기자

“솔직히 ‘미례’같은 분들에 대한 연민이 있었어요. 착하고 잘 참으면 ‘만만하다’고 깔보는 시선이 아쉽고 슬프죠. 미례의 자격지심,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저도 경험한 적이 있으니 공감이 되요. ‘오피스’가 그리는 보이지 않는 폭력에 대한 개념이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의식 속에 깊게 박힌 것 같은 데, 보시고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는 생각의 틈을 가지시는 계기가 된다면 좋겠어요. 세상의 모든 이미례 파이팅!!!”

김재범 기자 cine517@

뉴스웨이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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