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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나일론의 선구자’ 이동찬 코오롱 명예회장 별세(종합)

‘한국 나일론의 선구자’ 이동찬 코오롱 명예회장 별세(종합)

등록 2014.11.08 17:59

수정 2014.11.08 19:22

강길홍

  기자

한국 섬유산업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이동찬 코오롱 명예회장이 향년 92세로 8일 별세했다.

코오롱그룹에 따르면 이 명예회장은 이날 고령으로 인한 지병으로 별세했으며, 빈소는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됐다.

코오롱그룹은 이원만 창업주가 1930년대 일본으로 건너가 사업의 기틀을 마련하고 나서 해방 후 국내 최초로 나일론을 들여와 국내 섬유산업을 개척했다.

경북 포항 출신인 이 명예회장은 일본 와세다대학을 졸업한 뒤 1957년부터 부친인 이원만 코오롱 창업주를 돕기 위해 경영에 참여했다.

이 명예회장은 1957년 국내 첫 나일론사 제조공장이자 코오롱의 전신으로 불리는 한국나일론을 설립하면서 오늘날의 코오롱으로 성장시킨 장본인이다.

이후 1977년 한구폴리에스텔과 합병하며 주식회사 ‘코오롱’으로 상호를 변경하며 새롭게 출발하며 이때부터 이 명예회장이 전면 경영자로 나서며 본격적인 2세 경영을 시작했다.

이 명예회장의 취임과 함께 코오롱은 지속적인 연구개발 투자를 통한 기술혁신에 속도를 냈다. 1973년 국내 최초로 자동차소재 사업에 진출했고 1980년대엔 필름 및 산업자재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해갔다.

1990년대 들어선 고부가가치 섬유제품 개발에도 박차를 가했다. 그 결과 1993년 초극세사를 이용한 고도의 원사기술, 초정밀 공정관리 기술이 결집된 첨단 섬유소재 ‘샤무드’를 세계에서 3번째로 양산한다.

이 명예회장은 장남인 이웅령 현 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겨주구 1997년부터는 사실상 경여에서 손을 떼고 등산과 낚시 등을 즐기며 생활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3세 경영을 시작한 이 회장은 1997년 닥친 외환위기로 모진 시련을 겪어야 했다. 한국화낙, 코오롱메트생명보험, 코오롱전자를 매각했고 ㈜코오롱은 스위스 보스턴투자은행으로부터 5000만달러 외자를, 코오롱상사도 BMW로부터 2000만달러 외자를 도입했다.

광고회사 ㈜한인기획을 그룹에서 분리했고 A&C코오롱, 코오롱씨드50, 코오롱호텔 등 3개사를 ㈜코오롱스포렉스에 합병했다. 이후 ㈜코오롱A&C의 코오롱메라크섬유, 코오롱남바 흡수합병해 ㈜코오롱글로텍으로 상호를 변경했다.

이 회장은 그룹의 미래라 불렀던 신세기통신 지분 전량을 눈물을 매각하기도 했다. 외환위기를 견뎌낸 후 코오롱그룹은 다시 사업다각화에 박차를 가했고 최근엔 수처리 분야에 관심을 쏟고 멤브레인 등 관련사업을 진행 중이다.

지난 2012년에는 이웅열 회장의 장남 규호씨가 코오롱인더스트리로 입사하며 4세 경영수업까지 들어간 상태. 이로써 코오롱그룹은 창업주인 이원만 회장을 시작으로 이동찬 명예회장, 이웅렬 회장, 규호씨까지 이어지는 4세 경영을 준비하고 있다.

한편 코오롱그룹의 3세 경영 승계는 사실상 마무리된 상황이다. 이 명예회장은 슬하에 1남 5녀를 뒀고 경영권은 자연스럽게 외아들인 이웅열 회장에게 넘어갔다. 이웅렬 회장은 코오로그룹의 지주회사격인 (주)코오롱의 지분 44.06%를 보유하고 있고 이동찬 명예회장이 8.4%을 보유하고 있다.

강길홍 기자 slize@

뉴스웨이 강길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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