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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익 감독 “‘소원’ 온가족이 손 잡고 보는 영화 됐으면”

[인터뷰] 이준익 감독 “‘소원’ 온가족이 손 잡고 보는 영화 됐으면”

등록 2013.10.15 09:17

김재범

  기자

사진 = 김동민 기자사진 = 김동민 기자

다른 건 다 제쳐두고 제일 궁금했다. 2010년 영화 ‘평양성’의 흥행 실패 책임을 지고 상업영화 연출 은퇴를 선언했던 이준익 감독이 복귀를 선언했다. 복귀작 ‘소원’은 아동 성폭행이란 우리 사회의 금기 중 가장 민감한 소재를 다뤘다. 이준익이 누구인가. 1000만 영화 ‘왕의 남자’를 비롯해 ‘황산벌’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평양성’ 등 사극 장르에 특화된 연출력을 인정받아온 거장이다. 물론 ‘라디오 스타’ ‘즐거운 인생’ ‘님은 먼곳에’ 등 장르 영화에 대한 감각도 탁월했다. 그런 그가 상업영화 은퇴를 선언했을 때 충격이었다. 그리고 돌아온 첫 작품이 ‘소원’이다. 사실 ‘소원’은 워낙 민감한 소재라 충무로에서 말이 많았던 작품이다. 시나리오의 완성도는 흠잡을 데가 없다. 단지 아동 성폭행을 다룬 내용이 문제였다.

개봉 전 이 감독을 만났다. 쉰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아직도 패셔너블한 영화인의 모습 그대로였다. 자택인 홍은동에서 인터뷰 장소인 삼청동까지 오토바이를 직접 몰고 왔단다. 멋드러진 오토바이가 눈에 띄었다. 그는 “젊게 살아야 돼 젊게”라며 껄껄거리고 웃었다.

사진 = 김동민 기자사진 = 김동민 기자

첫 질문을 다시 했다. 왜 소원이었나. 이 감독은 수십 번, 아니 수백번도 더 들었던 것 같다고 한다. 하지만 매번 대답을 할 때마다 기분은 다르단다. 잠시 담배를 한 개비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이 감독은 “내가 질문을 해 보겠다. 이런 얘기를 그냥 덮어 두는 게 맞다고 생각하나?”라면서 “아마도 쉽게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난 질문을 하고 싶었다. ‘과연 그냥 두는 게 맞는 것인가’라고”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말대로 ‘소원’에는 어떤 특정한 묘사도 없다. 우려한 아동 성폭행 장면도 가해자에 대한 단죄도 말이다. 단지 관객들에게 ‘소원’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주인공 ‘소원’이의 진짜 소원이 무엇일까라고.

사진 = 김동민 기자사진 = 김동민 기자

그는 “가해자에 대한 단죄는 이미 수도 없이 봐왔다. 그럼 진짜 핵심인 피해자는? 그들은? 그냥 당신들이 잘못한 것이니 그렇게 살아라? 왜 그런 상황 속에 있었나? 이게 바로 진짜 폭력이다. ‘소원’은 피해자 가족들의 진짜 소원이 무엇일까를 묻는다. 가해자의 단죄? 아니다. 바로 일상으로의 복귀다. 그것보다 더한 소원이 있을까”라며 다소 격앙된 목소리를 전했다.

이 감독의 말처럼 영화 속 ‘소원’이는 외친다. ‘그냥 우산을 씌어 준 것 뿐인데 왜 내게 잘했다는 사람이 없나’라고. 결국 ‘소원’은 사건의 민감한 외피가 아닌 진짜 속을 들여다 보고 무엇이 진짜인지를 묻는 영화라고 이 감독은 말했다.

그럼에도 일부에선 이 영화에 대해 불편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굳이 왜 들춰내는가’라고. 이 감독은 잠시 고심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하기 쉽지는 않다’ 면서.

사진 = 김동민 기자사진 = 김동민 기자

그는 “시사회 날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관객분들이 박수를 쳐주시더라. 고마웠다”면서 “그런데 한 분이 내게 오셔서 엽서를 하나 주고 가셨다. 여자 분이었는데 손글씨로 ‘감사하다’는 인사말이 적혀 있었다”고 전했다. 이 감독에 따르면 당사자는 엽서에서 자신을 실제 성폭행 피해자라고 소개했다는 것.

이 감독은 “아직도 그분의 얼굴이 잊혀지지 않는다”면서 “너무도 환하게 웃으며 내게 인사를 하고 갔다. 내 영화에서 그분이 힐링을 받았을까. 아니다.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분 역시 아픔이 있지만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 찾은 것이고, ‘소원’ 역시 그 점을 얘기하고 싶었다. 그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해온 것이라 생각한다”고 숙연한 모습을 보였다.

개봉 전 시사회가 열릴 때마다 이 감독은 매번 현장에 참석했고, 그때마다 자신의 진짜 아픔이 무엇인지를 짚어 준 ‘소원’에 대해 감사의 인사를 받았다는 얘기를 더했다. “어느 순간 내가 고해성사를 받는 신부님이 된 느낌도 받았다”면서 “솔직히 그런 얘기들을 들을 때마다 정말 힘들었다. 그 분들의 고통이 전해지는 것 같아서. 하지만 그 분들이 웃으며 가는 모습이 ‘내가 틀리지는 않았구나’란 생각을 하게 됐다”며 안도의 한 숨을 쉬었다.

사진 = 김동민 기자사진 = 김동민 기자

이 감독은 언론 시사회가 끝난 뒤 열린 기자 간담회 그리고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소원’의 흥행 여부를 묻는 질문에 대해 ‘불손한 태도’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는 “아동 성폭행 피해 소재를 다룬 영화이기에 그런 얘기를 하는 것 자체가 불손하다? 맞다.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진짜 내가 그런 말을 했던 이유가 있다”면서 “1000만 영화도 찍어 봤다. 영화 한 두 편 만들어 본 것도 아니다. 상업 영화 은퇴 선언도 해봤다. 그런데 복귀작으로 ‘소원’을 택했다. 왜? ‘소원’이 말하는 진짜 ‘소원’에 대한 간절함이 아마도 내 마음을 움직였던 것 같다. 그래서 흥행 여부에 대한 질문에 다소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 같다”며 웃었다.

주인공 아역 배우 이레에 대한 칭찬을 부탁했다. ‘소원’을 통해 첫 데뷔한 아역이다. ‘소원’에서 힘들었던 장면을 무리 없이 소화했다. 이 감독은 “‘아이는 어른들의 스승’이란 말을 이 영화를 통해 다시 배웠다. ‘그냥 연기잖아요’라며 천연덕스럽게 하는 모습에 정말 대성할 배우란 생각을 했다”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사진 = 김동민 기자사진 = 김동민 기자

이 감독은 “OST를 부른 윤도현이 단 20분 만에 주제곡을 작사 작곡할 정도로 많은 분들에게 좋은 느낌을 전달한 것 같아 안심이 된다”면서 “꼭 온 가족이 이 영화를 보고 우리가 무엇을 잘못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김재범 기자 cine517@

뉴스웨이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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