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3월 29일 금요일

  • 서울 10℃

  • 인천 10℃

  • 백령 8℃

  • 춘천 7℃

  • 강릉 13℃

  • 청주 12℃

  • 수원 10℃

  • 안동 15℃

  • 울릉도 13℃

  • 독도 13℃

  • 대전 13℃

  • 전주 15℃

  • 광주 15℃

  • 목포 15℃

  • 여수 17℃

  • 대구 20℃

  • 울산 19℃

  • 창원 18℃

  • 부산 16℃

  • 제주 15℃

전문가 칼럼 英 이코노미스트 'ESG 비판'에 대한 비판

전문가 칼럼 류영재 류영재의 ESG 전망대

英 이코노미스트 'ESG 비판'에 대한 비판

등록 2022.09.22 12:30

英 이코노미스트 'ESG 비판'에 대한 비판 기사의 사진

지난 7월 21일자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ESG를 다룬 표지기사를 실었다. "ESG에서 'E'는 'Environmental(환경)'이 아닌 'Emission(배출)'의 'E'로 바뀌어야 되고, 따라서 탄소 배출 이슈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요약될 수 있다. E.S.G 각각은 상호 관련성이 모호할 뿐만 아니라 상충되는 지점도 존재하기에 점수 합산의 한계와 혼란도 야기하기 때문이란다.

이후 이코노미스트의 매체 영향력으로 인해 후폭풍이 거세다. 따라서 필자는 이코노미스트의 ESG 비판에 대해 ESG 진영 입장에서 반론을 제기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찬반 논의를 통해 ESG의 합리적이고 균형있는 여론 형성을 위해서다.

우선 필자는 이코노미스트와 파이낸셜타임즈(FT)의 장기 구독자이다. 알려졌듯이 이코노미스트는 기업과 산업의 입장을 주로 대변하는 보수 정론지다. 따라서 그동안 이코노미스트는 기업에게 추가적인 비용유발, 연성규범이나 규제 등으로 작용할 수 있는 ESG이슈에 대해 줄곧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해 왔다.

반면 FT는 4년 전부터 '모럴 머니(Moral Money)'라는 별도 섹션을 만들어 FT의 간판 저널리스트인 질리안 테트를 편집장으로 앉혀 활발하게 ESG 담론을 주도해 왔다. 물론 FT에서도 ESG에 대한 긍정 일색의 기사만 다룬 것은 아니었다. FT는 비교적 균형 있는 토론지형을 제공하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고 판단된다.

하지만 이코노미스트는 달랐다. 이들은 지난 2년간 세계적으로 ESG 열풍이 불 때는 침묵하다가,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ESG 비판론이 비등하자 그 분위기에 편승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비판의 순기능이 존재하기에 필자는 비판에 귀를 막거나 눈감지 않는다. 오히려 환영한다. 역사를 돌아보면, 하나의 담론이나 분야가 주류 무대에 자리 잡기까지는 다양한 비판들을 통과해야 한다. 무조건 '직진 우상향'하지는 않는다.

비판을 극복하면서 특정의 주장들은 소수설에서 다수설로, 더 나아가 보편법칙으로 자리매김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수많은 비판들은 해당 주장의 이론적 완결성과 논리적 정합성을 높이는데 오히려 도움이 된다.

다시 이코노미스트 기사로 와보자. 필자는 이코노미스트가 '지속가능성' 이슈에 대한 포괄적이며 객관적 이해를 결여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불편한 이슈에 대해 자기편의적 팩트 선택을 지속하면 누구든 확증편향에 빠진다.

특히 저널리즘의 확증편향은 합리적 담론 형성을 저해하고 진영론적 분열을 조장할 뿐이다. 이코노미스트의 오랜 역사와 명성을 고려할 때 이 점에서 실망스럽다.

ESG는 지속가능성의 대리변수로서 2004년 유엔의 한 보고서(Who Cares Wins: Connecting financial market to a changing world)에서 처음 등장한 용어다. 즉 투자자들이 '산업과 기업의 지속가능성 수준'을 측정한 후 투자에 반영함으로써 산업혁명 이후 인류가 야기한 지속 불가능성의 난제를 풀고자 등장했다.

'측정하지 못하면 관리할 수 없다'는 금언을 배경으로 한 이 난제는 비단 지구환경 개선이나 탄소 저감만으로 풀 수는 없는 복합적이며 장기적인 메가톤급 퍼펙트 스톰이다.

유엔이 '지속가능한 발전 목표(UN SDGs)'에서 17가지 목표를 제시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즉 환경, 기후변화 이슈뿐만이 아니라, 빈곤, 양극화, 교육 문제, 양성평등, 소비자 이슈, 평화, 보건과 웰빙 등이 그것이다.

인류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위 이슈들 중 어느 하나도 소홀히 다룰 수는 없다. 예컨대 가공할만한 핵탄두와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등 최첨단 무기의 대량살상력을 고려할 때, 이제 그 어떤 국지전조차도 가볍지 않다. 인류 공멸의 단초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무기 개발, 설계, 제조, 유통과 연루된 그 어떤 기업도 돈벌이가 된다는 이유로 자본시장 투자자의 우선순위에 올라서는 안 된다. 전쟁 이슈는 기후변화 이슈보다 결코 후순위 과제가 아니다. 하지만 이코노미스트는 인류 지속가능성 이슈를 탄소문제로만 환원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크게 세 가지 관점에서 ESG를 비판한다. 하나하나 생각해 보자.

첫째, ESG는 여러 목표들을 한 더미에 묶어 놓은 일관성 없는 평가 프레임웍에 불과하다?

앞서 언급했듯 ESG는 UN SDGs의 17가지 목표와 같이, 인류의 지속 가능성 제고를 위한 다양한 과제들을 포괄하고 있다. 따라서 해당 과제들간 상충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이런 현상들은 비단 ESG 영역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 세상 거의 모든 부문에 존재한다.

예컨대 기업경영도, 복잡하게 상충하는 이해의 조정과정과 다름 아니다. 즉 서로 입장이 다를 수 있는 주주, 종업원, 협력사, 소비자 간 이익의 최적 절충점을 모색해 나가는 것이 기업경영의 본질이다.

또한 다양한 경영 행위들 간에도 상호 충돌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고객관리, 제품 개발, 생산관리의 세 개 부문은 숙명적으로 늘 부딪히며 함께 간다. 이 부문들간 모순과 갈등을 조정하는 것이 바로 경영의 기술이다. ESG 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상충 없는 수미일관을 기대하는 것은 유토피아적이다. 시장의 현실을 중시하는 보수 정론지 답지 않다.

둘째, ESG는 기업에게 경영 성과의 인센티브(혹은 패널티)가 되지 못한다?

아니다. GSIA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투자 자금의 1/3가량은 기업의 ESG성과를 고려해 투자한다. 이들은 MSCI, Sustainalytics, S&P 등의 평가기관들로부터 투자대상기업의 ESG 등급을 받아 주식, 채권, 대체투자 등에 나서고 있다.

예컨대 최근 S&P같은 신용평가사는 듀크 에너지(Duke Energy)의 과도한 석탄재 배출문제로 인한 환경오염 리스크가 높다는 이유로 신용등급을 A stable에서 A- negative로 강등시켰다. 드랙스 파워(Drax Power)의 경우에도 탄소배출량 과다로 인해 BB+에서 BBB-로 강등되었다.

이 경우 해당 기업의 자본비용은 그만큼 상승한다. 국내에서도 올 초 광주 아파트 붕괴사고를 일으켰던 현대산업개발은 최근까지 채권 발행이 안돼 자금조달에 문제가 발생했다. 따라서 ESG 관련 성과에 따른 시장으로부터의 패널티와 인센티브는 엄연히 존재한다.

셋째, ESG는 측정의 문제가 존재한다? 즉 신용평가 회사의 상관계수가 0.99인데 비해 ESG평가사간 그것은 매우 낮다?

낮은 상관계수의 문제는 크게 세 가지 이유로 발생한다. 먼저 평가사 간의 평가항목 설정이 서로 다르고 평가사 간 ESG 정보와 데이터의 차이가 존재하며 스코어링이나 가중치 설정 등 평가사 간의 평가 방법론도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ESG 정보와 데이터의 차이 문제는 향후 ISSB 주도의 ESG 정보공개 표준 가이드라인이 제정되고, 이에 따른 기업들의 ESG 정보공개가 확대되면 상당부분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다른 두 문제는 ESG 정보와 재무정보와의 본질적 차이로 인해 향후에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평가사 간 지속가능성에 대한 가치와 철학, 관점이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 예컨대 기후변화, 물 문제, 토양 오염, 대기오염 등 다양한 이슈가 존재하는 환경 문제에서도 평가사간 동일한 관점을 갖기란 불가능할뿐더러, 만일 같은 관점을 갖는다면 그것은 가치의 획일성을 뜻하기에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 따라서 향후에도 ESG평가사들 간의 상관계수는 상승하지 않을 것이고, 상승해서도 안 된다.

기후변화 이슈가 심각한 것은 사실이지만 여타 지속가능성 이슈들도 그 못지않게 심각하다. 지속가능성 이슈와 같이 다양한 이슈들을 관리해야 하는 것은 분명 기업들에게는 비용부담 요인이다. 그러나 지금이 가장 싸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부담은 스노우볼처럼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호미로 막을 것은 호미로 막아야지 가래까지 동원되면 안 된다. ESG 이슈가 그렇다. 이번 이코노미스트의 격에 떨어진 비판이 혹여 비용 부담을 염려하는 기업이나 산업의 입김 때문은 아니길 소망한다. 세상에 믿고 읽을 정론지 몇 개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ad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