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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 흑역사]잇딴 구설수에 실적 악화까지···바람 잘 날 없는 애경그룹

세제 제조업체서 재계 50위 기업으로 성장
횡령·프로포폴 투약에 가습기 살균제 논란까지
그룹 실적 내리막인데 곳곳서 가족경영 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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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경그룹은 비누, 세제 등 생활용품 기업으로 시작해 백화점, 석유화학, 항공, 화장품까지 전방위로 사업을 확장하며 굴지의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1970년 창업자인 고(故) 채몽인 애경그룹 회장의 갑작스러운 타계 이후 그의 부인인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이 경영 일선에 나서면서 회사를 재계 50위권 그룹으로 일궈냈다는 평을 받는다.

승승장구하던 애경그룹은 2000년대 후반부터 크고 작은 구설수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채형석 총괄부회장을 비롯한 오너 2세들은 회삿돈 횡령, 프로포폴 투약 등으로 법정에 섰다. 애경그룹은 수천명의 피해자를 낸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책임을 회피한다는 논란으로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었다. 최근에는 주요 계열사 대부분의 실적이 크게 부진한 가운데 이렇다 할 돌파구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장영신, 女CEO로 역사 만들었는데…장남 횡령에 삼남은 프로포폴 = 애경그룹의 역사는 1954년 비누제조업체 애경유지공업에서 시작됐다. 창업주인 채몽인 전 회장은 1956년 국내 최초로 순수 기술로 만든 화장비누 ‘미향’을 시작으로 1966년 국내 최초 주방세제 ‘트리오’ 등을 선보이며 한국 세제 시장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던 중 채 전 회장이 1970년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그의 부인인 장영신 회장이 경영 일선에 나서게 됐다.

장 회장은 당시만 해도 35살의 젊은 가정주부였다. 미국에서 화학을 전공한 재원이었으나 결혼 이후 11년째 가정에 집중했던 만큼 그가 경영 일선에 나설 때만 해도 반대가 거셌다. 그러나 장 회장 체제에서 애경은 가파르게 성장하며 일각의 우려를 모두 불식했다. 애경은 1970년대 이후 기초화학 사업에 뛰어든 데 이어 1990년대에는 애경유지 영등포 공장 부지에 AK플라자 구로본점의 전신인 애경백화점을 열며 유통업에도 진출했다.

장 회장의 자녀들도 애경그룹의 성장에 가세했다. 2000년대 들어 그의 자녀들이 모두 경영에 참여하면서 애경그룹은 항공업, 면세점업, 부동산개발업까지 뛰어들며 사세를 크게 확장했다. 2018년에는 자산규모 5조원의 대기업집단에 편입되며 명실상부한 대기업 반열에 올랐다.

그룹 역사가 창업주의 갑작스러운 타개에서 시작된 만큼 애경그룹 오너 일가의 가족애는 상당히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족 모두가 경영 일선에 참여하며 회사 성장을 이끌었고 가족간 다툼도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가족경영’이 오히려 애경그룹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그룹 덩치에 맞지 않게 가족경영에 의존하면서 리스크에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데다가 지나친 내부거래 등 가족경영의 폐단이 생기고 있기 때문이다. 오너들이 줄줄이 구설수에 오른 점 역시 그룹의 약점이 됐다.

논란의 시작은 장영신 회장의 장남이자 현재 애경그룹을 이끌고 있는 채형석 총괄부회장이었다. 채 총괄부회장은 2008년 12월 회사 자금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검찰에 구속됐다. 2005년과 2007년 두 차례에 걸쳐 회사공금 20억원을 빼돌려 개인 용도로 사용했다는 혐의였다. 그는 2009년 4월 1심에서 징역 2년6월, 집행유예 4년의 유죄 선고 받았다. 그는 2010년 8월 광복절 특사로 사면을 받았으나 재계의 지탄을 받았다.

최근에는 셋째 아들인 채승석 전 애경개발 대표마저 프로포폴 투약 사건에 연루됐다. 채 전 대표는 서울 강남의 한 성형외과 원장과 해당 병원 직원들로부터 2017년 9월부터 2019년 11월까지 약 100차례 프로포폴을 불법 투약한 혐의(마약류관리법 위반)로 재판에 넘겨졌다. 지난해 1심에서는 징역 8월을 선고 받아 법정 구속됐으며, 올해 1월 보석으로 풀려난 뒤 4월 2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

◇가습기 살균제 책임 회피 논란…사위 안용찬마저 재판 받아 = 애경그룹을 둘러싼 논란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애경그룹이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주요 책임 기업으로 지목 받았으나 책임을 제대로 지지 않고 있다는 논란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최근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공론화 된지 10주년을 맞이하며 이 같은 논란은 더 거세지고 있다.

애경은 SK케미칼(옛 유공)로부터 받은 원료로 만든 ‘가습기살균제’를 판매했는데 이 제품 때문에 질병을 얻었다고 피해를 신고한 이들은 현재 2000여 명이 넘는다. 사망자도 250명이 넘는다. 이는 최다 피해자를 낸 옥시레킷벤키저 다음으로 많은 숫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애경그룹이 이렇다할 책임을 지지 않고 있는 것은 애경의 가습기 살균제 제품의 유해성이 명확히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경의 가습기 살균제는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를 원료로 하고 있다.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수면 위로 떠오른 후 검찰이 2016년 이 사건 특별수사팀을 꾸릴 당시까지 이 CMIT·MIT의 유해성이 명확히 입증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애경은 2016년 옥시 등 주요 가해기업들이 공식 사과를 할 당시까지 책임을 피해갔다.

이후 CMIT와 MIT의 유해성에 대한 학계 역학조사 자료가 쌓이고, 환경부가 관련 연구자료를 제출함에 따라 검찰의 재수사가 2018년 말 시작됐다. 이 때 애경그룹 관계자들 역시 대거 기소돼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이렇게 기소된 애경그룹 관계자 중에는 장영신 회장의 사위이자 애경산업 대표를 역임했던 안용찬 전 제주항공 대표(부회장)가 포함돼 있다.

애경그룹은 2011년 가습기 살균제 논란이 발생한 이래 침묵을 지켰으나 2019년 8월 사회적참사특별위원회가 연 청문회에 오너 일가가 불려가면서 공식 사과했다. 당시 청문회에는 장 회장의 차남인 채동석 애경산업 대표이사 부회장과 안 전 대표가 참석했다. 채 부회장은 이 자리에서 “피해자와 가족분들에게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면서도 “판결이 나오면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다”는 단서를 달면서 비난을 받았다. 앞서 채 부회장은 같은해 4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의 통화에서 자신의 신분을 ‘비서’라고 속인 일로도 구설수에 오른 바 있다.

안용찬 전 부회장 등은 지난 1월 1심 판결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애경의 가습기 살균제 원료가 폐 질환이나 천식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여전히 피해자들은 애경 가습기 살균제에 대한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무죄가 나온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유통·화장품·항공 부진한데 오너 사익편취 논란 = 이처럼 가습기 살균제 논란에 오너들이 연루된 것과 관련해서도 역시 애경그룹의 ‘가족경영’ 때문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주요 계열사 대다수 대표이사를 오너 가족들이 차지하고 있다 보니 법적인 문제가 생길 경우 이들 대부분이 줄줄이 연루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특히 가족경영을 하다 보니 리스크에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애경그룹은 한때 캐시카우였던 유통업(AK플라자), 화장품(애경산업) 등 주력 사업 대부분이 크게 부진한 상황이다. 애경그룹 백화점 부문 매출액은 2013년 5131억원을 기록한 이후 지속 내림세로 지난해에는 2020년 3004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2019년에는 그룹 모태인 애경유지공업의 공장터에 세웠던 ‘1호’ AK플라자 구로본점마저 닫았다. NSC형(지역친화형쇼핑센터) 형태의 쇼핑몰로 야심차게 내놨던 신규 브랜드 AK&마저 부진하면서 3년만에 브랜드 전략을 수정하기까지 했다.

애경산업 화장품 부문 역시 크게 부진하다. 2018년 화장품 부문 매출액이 3581억원을 기록한 데 힘입어 사상 최대 매출액(6996억원)을 기록했던 애경산업은 지난해 화장품 매출액이 211억원까지 줄어들며 타격을 입었다.

이런 상황에서 항공업(제주항공)마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직격탄을 맞으면서 애경그룹은 큰 위기에 직면한 상황이다. 제주항공의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액은 3770억원으로 전년 대비 73%나 급감했고 영업손실은 3358억원에 달했다. 제주항공은 코로나19 사태 직전 이스타항공을 인수하려던 계획마저 지난해 최종 무산됐다.

그룹 내부거래를 통해 오너일가의 사익 편취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애경그룹의 사익편취 규제 대상 기업수는 현재 애드미션과 에이텍, 비컨로지스틱스, 애경개발, 에이엘오, 에이케이아이에스, 에이케이홀딩스, 우영운수, 인셋, 코스파 등 10곳이다. 이들 회사는 모두 장 회장과 그의 아들, 사위, 며느리, 사돈 등이 지분 다수를 갖고 있고 내부거래를 통해 성장해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정혜인 기자 hi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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