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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화(昇華)㉓일념

[배철현의 테마 에세이]승화(昇華)㉓일념

등록 2019.12.11 14:37

수정 2020.01.03 13:29

승화(昇華)㉓일념 기사의 사진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있다. 대한민국을 구성하는 국민 한명 한명이 선진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다. 애벌레가 고치 안에서 일정한 시간을 보낸 후에 나비가 되듯이, 인간은 과거의 자신을 직시하고 개선하기 위해 자신이 마련한 고치에서 변신을 시도해야한다. 그 변신은 정신적이며 영적인 개벽이다. 필자는 그 개벽을 ‘승화’라고 부르고 싶다. ‘더 나은 자신’을 모색하는 스물세 번째 글의 주제는 ‘일념’이다


일념(一念) ; 나만이 완수할 수 있는 고유한 임무는 무엇인가


생각은 말과 행동을 움직이게 하는 나의 중앙제어장치다. 내가 생각을 장악하고 정교하게 다듬는 훈련을 무시하거나 소홀히 여긴다면, 말과 행동도 허접해질 것이다. 말과 글을 연습하고, 이것들이 생산되는 가시적인 주체인 몸을 함부로 다루면, 흩어진 몸이 다시 생각과 말에 영향을 주어 나를 어눌하게 만들 것이다. 요가는 이 세 가지 인간 활동들을 최적화된 상태로 유지하기 위한 훈련이다. 생각훈련이란, 자신에게 알맞은, 그래서 나의 최선을 발휘하게 만들 수 있는 한 가지 대상을 찾는 연습이다. 그래야 무아 상태로 진입하여, 나만이 완수할 수 있는 고유한 임무를 발견할 수 있다.

인도인들은 그 고유임무를 ‘다르마’dharma라고 불렀다. 불교가 중국으로 전파되면서, 다르마는 한자 法(법)으로 번역되었다. ‘법’이란 강물의 물 흐름과 같이, 당연하고 저돌적인 것으로,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과감히 유기하려는 삶의 규범이다.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아는 유일한 동물인 인간이, 자신의 ‘다르마’를 발견하고 발휘한다면 행복하다.

자신의 다르마를 찾기 위해 방안이 ‘일념’이다. 요가수련에선 ‘일념’을 산스크리트어로 ‘에카그라타’ekāgratā라고 부른다. ‘에카그라타’란 자신이 발견한 ‘하나’eka안으로 온전히 들어가는agra 마음훈련이다. 일념의 훈련을 통해 마음을 잔잔한 호수처럼 개조할 수 있다. 일념은 파도와 같이 분산된 생각들을 제어하여 잠잠하게 만든다. 예수가 갈릴리 호숫가에서 고기 잡기에 실패한 시몬(후에 베드로로 개명)과 안드레에게 “깊은 곳으로 네 자신들 인도해보십시오!”라고 말했는데. 여기서 ‘깊은 곳’이란 자신의 다르마가 숨겨져 있는 장소다. 그곳으로 진입하도록 도와주는 가이드가 ‘일념’이다. 일념은, 인간이 자신이 그 분야에서 스스로에게 만족스럽고 그래서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어울리고 감동적인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유일한 도구다. 인간은 깊은 곳을 두려워한다. 사실은 깊은 곳을 두려워하는 자신이 두려운 것이다. 그 길을 막는 괴물은 바로 자신이다. 깊은 곳은, 어느 누구도 가본 적이 없어, 나의 힘과 의지로 정복해야하는 미궁의 한 가운데다. 내가 정신을 차리고, 그 진입하는 여정을 분명히 기억하면, 나는 능히 그 안에 존재하는 미노타우로스라는 괴물을 살해할 수 있다. 이 괴물을 물리치는 무기가 바로 일념이다.

미국 초월주의자 헨리 데이빗 소로는 <바그바드기타> <마누법전> 그리고 <비슈누 프라나>와 같은 고대 인도경전들에 심취하였다. 특히 <비슈느 프라나>에 등장하는 북극성이 된 드루바Dhruva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았다. ‘단호한’이란 의미인 ‘드루바’는 왕족이었으나, 왕위가 형에 돌아가자 낙담한다. 드루바의 결심한다. “나는 아버지 왕조차 획득할 수 없는 것을 추구할 것이다.” 그는 숲으로 들어가 일곱 현인들은 만나 그 누구도 가보지 않는 지경으로 진입하기 바란다고 말한다. 그들은 우주를 지탱하는 신인 비슈누에 기도하라고 조언한다. 드루바는 야무나 강둑에 올라 명상을 시작하였다. 드루바는 삼매에 진입하였다. 그의 간절함이 어찌나 강력했던지, 심지어 신들도 쉴 수 없었다. 신들이 악마를 보내고 호랑이를 보내도,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는 일념으로 비슈누 신에게만 기도하였다. 신들은 드루바가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신이 되어, 신들을 모두 몰살시킬 것이라고 걱정한다. 비슈누는 드루바의 목적은 그런 권력이 아니라고 말한다. 드루바는 단지 비슈누신을 눈으로 직접 목격하고 싶었다. 비슈누는 드루바가 모든 별들이 운행할 수 있는 기준이 되도록 하늘 가운데 그를 고정시켰다. 그래서 일곱 현인들은 큰 곰자리별인 북두칠성이 되고 드루바는 움직이지 않는 북극성이 되었다.

소로가 드루바 이야기에 영감을 얻어 만든 이야기가 <월든 호수>인데 마지막 장인 ‘결말’에 ‘쿠루 도시’의 한 장인 이야기가 등장한다. 쿠루는 <바가바드기타>에서 같은 왕조의 친척들인 판다바Pandava라는 오형제와 카우라바라는 그의 사촌들 간의 전쟁이 일어나는 들판이다. 쿠루의 들판은 바로 다르마가 무엇인지 찾아가는 들판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한 장인이다. 그의 인생목표는 ‘완벽’이다. 하루는 자신의 완벽을 지팡이를 통해 수련하기로 결정했다. 그에게 불완전이란 부족한 시간이다. 완벽이란 시간조차 개입할 수 없는 무아지경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숲으로 들어가 자신이 원하는 지팡이에 어울리는 나무를 찾기 시작하였다. 마음에 드는 나무가 없어, 한참동안 숲속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동안, 그의 친구들은 하나 둘씩 떨어져 나갔다. 그들은 간절하게 추구하는 것이 없어, 결국 늙어갔고 세상을 떠났다.

장인에게는 시간을 거슬리는 마법이 있었다. 분명한 목적과 단호한 결심, 바로 ‘에카그라타’, 즉 ‘일념’이다. 그는 매일 매일 경건하게 완벽한 지팡이를 만들기 위해 몰입하였다. 우주의 주인인 시간조차 달아나 버렸다. 그는 영원한 청년이다. 그는 시간에게 자신을 양보하지 않았다. 시간은 자신이 정복할 수 없는 이 장인을 보고 멀리서 한 숨만 지을 뿐이다. 장인이 적당한 나무를 찾기도 전에, 그가 살던 쿠루라는 도시는 폐허로 변했다. 그는 한 언덕에 앉아 나무껍질을 베끼기 시작하였다. 나무가 지팡이 모양을 취하기도 전에, 칸다하르 왕국이 소멸되었다. 그는 그 나무의 끝으로 모래 위에 칸다하르 인종의 마지막 이름을 쓴 후, 다시 나무를 다듬기 시작하였다. 그동안 영겁이 지나 북극성도 사라졌다. 그가 지팡이 손잡이를 만들고 보석으로 장식하기도 전에, 우주를 창조한 신인 브라흐마가 몇 번이고 잠에서 깨어났다 다시 잠들었다.

마침내 그는 그가 간절히 원했던 지팡이를 완성하였다. 그 지팡이는 브라흐마신이 만든 창조물들 중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변모하였다. 그가 지팡이를 만드는 동안, 오래된 도시와 왕조가 사라지고, 더 아름답고 웅장한 도시와 왕조가 들어섰다. 우주의 새로운 문법이, 그의 일념으로 만들어졌다. 장인이 이제 눈을 들어 사방을 응시한다. 그리고 자신의 발에 쌓인 나무껍질 부스러기를 보고 깜짝 놀란다. 영겁이란 시간의 흐름은 환영이었다. 그것은 자신의 뇌에 떨어진 브라흐마신의 뇌에서 나온 섬광의 순간이었다. 그는 일념을 통한 순간 안에서 가장 완벽한 지팡이를 만들어냈다. 자신의 마음속으로 퇴거하여, 적당한 나무를 찾아 완벽한 지팡이를 만드는 과업만이 거룩하다. 그런 행위는 인생이라는 제한된 시간을 초월하는 북극의 오로라다. 나는 그런 나무를 찾았는가? 나는 내가 제작할 지팡이를 만들고 있는가? 나는 지금 일념을 수련하고 있는가?

<나무를 깎는 소년>미국 화가 윈슬로우 호머 (1836–1910) 유화, 1873, 40 cm x 57.6 cm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나무를 깎는 소년>미국 화가 윈슬로우 호머 (1836–1910) 유화, 1873, 40 cm x 57.6 cm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필자 소개>
고전문헌학자 배철현은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셈족어와 인도-이란어를 전공하였다. 인류최초로 제국을 건설한 페르시아 다리우스대왕은 이란 비시툰 산 절벽에 삼중 쐐기문자 비문을 남겼다. 이 비문에 관한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인류가 남긴 최선인 경전과 고전을 연구하며 다음과 같은 책을 썼다. <신의 위대한 질문>과 <인간의 위대한 질문>은 성서와 믿음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었다. 성서는 인류의 찬란한 경전이자 고전으로, 공감과 연민을 찬양하고 있다. 종교는 교리를 믿느냐가 아니라,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고, 연민하려는 생활방식이다. <인간의 위대한 여정>은 빅히스토리 견지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추적하였다. 이 책은 빅뱅에서 기원전 8500년, 농업의 발견 전까지를 다루었고, 인간생존의 핵심은 약육강식, 적자생존, 혹은 기술과학 혁명이 아니라 '이타심'이라고 정의했다. <심연>과 <수련>은 위대한 개인에 관한 책이다. 7년 전에 산과 강이 있는 시골로 이사하여 묵상, 조깅, 경전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블로그와 페북에 ‘매일묵상’ 글을 지난 1월부터 매일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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