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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화(昇華) ㉑ 무리

[배철현의 테마 에세이] 승화(昇華) ㉑ 무리

등록 2019.11.26 15:04

수정 2020.01.03 13:30

 승화(昇華) ㉑ 무리 기사의 사진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있다. 대한민국을 구성하는 국민 한명 한명이 선진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다. 애벌레가 고치 안에서 일정한 시간을 보낸 후에 나비가 되듯이, 인간은 과거의 자신을 직시하고 개선하기 위해 자신이 마련한 고치에서 변신을 시도해야한다. 그 변신은 정신적이며 영적인 개벽이다. 필자는 그 개벽을 ‘승화’라고 부르고 싶다. ‘더 나은 자신’을 모색하는 스물한 번 째 글의 주제는 ‘무리’다


무리(無理) ; 적절(適切)과 적당(適當)으로부터 벗어난 상태



며칠 전 나는 코를 훌쩍거리는 나를 발견하였다. 온상과 같은 시골생활을 하다, 북적이는 서울에 나가는 스케줄이 생겨 내 몸이 고장이 났다. 감기는 내 몸에 보내는 경고장이다. 고대 그리스의 가장 중요한 신탁의 장소인 델피에 많은 낙서들이 있었다. 그중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네 자신을 알라’가 있다. 그 외에 ‘무리하지 말라’ 그리고 ‘약속은 미친 짓이다’와 같은 유명한 구절들이 있다. 며칠 동안 정신이 없었지만 기운을 차리고 ‘무리’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무리하지 말라’는 고대 그리스의 일곱 현인들 중에 한명인 스파르타의 킬론Chilon이 말했다. 그리스어로 ‘메덴 아간’(mēdén ágan)이다. 이 문장에는 동사가 없다. 만약에 동사가 존재한다면, ‘말하다’ 혹은 ‘행동하다’라는 동사의 명령형과 함께 ‘어떤 것도 정도에 벗어나 말하거나 행동하지 말라’ 정도가 될 것이다. ‘메덴’은 ‘그 어느 것도-하지 말라’라는 의미의 ‘부정명사’다. 영어로는 nothing에 해당한다. 이 명사는 내 일상에서 발견되는 모든 것일 수 있다. 킬로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무효화시키는 괴물을 부사副詞로 표현하였다. 그 부사가 ‘아간’이란 그리스 단어다,

‘아간’이란 단어는 ‘적절適切과 적당適當으로부터 벗어난 상태’를 표현하는 부사다. 적절適切이란, 자신이 가야할 길을 깨달아 알고, 그 길을 향해 의연하게 걸어갈 때 생기는 내공이다. 그 내공은 그 길을 방해하거나 유혹하는 군더더기를 용납하지 않는다. 적절은 한 송이 꽃이 피기 위해 당연히 자신의 토양에서 뿌리를 내고, 그 토양으로부터 싹을 내, 꽃과 열매를 맺기 위한 자연스런 절차다. 적절을 위해서는 모든 나무와 꽃이 그렇듯이, 다른 토양이나 환경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꽃들이 아름다운 이유는, 다른 꽃을 부러워하지 않고 온전히 자신에게 몰입해 있기 때문이다.

복음서에서 예수는 들에 핀 백합百合이 솔로몬 왕의 영광보다 아름답다고 말한다. 백합은 백가지 기운을 자신에게 집중한다. 그 결과 다가오는 모든 생물들에게 향기를 선물한다. 적절하다는 것은, 자신과는 상관없는,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것을 과감하게 자르는, 단절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아간’은 ‘적당適當’으로부터 벗어낸 상태다. 적당은 대충 얼버무리는 것이 아니다. 적당은 자신에게 맡겨진 숙명의 시간을 깨닫고, 그 적절한 시간에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과감이다. 적당이란 그리스인들이 말한 운명적이며 절대적인 시간인 ‘카이로스’kairos에 그 일을 당연히 하는 것이다. 봄이면 싹이 트고, 여름이면 김을 매고, 가을이면 추수하고 겨울이면 힘을 축적한다. 온 지구가 그렇고 그 안에서 잠시 기생하는 모든 동식물들이 그렇다.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적인 소명을 들으려하지 않고 자신 것이 아닌 다른 것을 시도하다 결국 남들의 꼭두각시가 된 자신을 보고 초라해진다. 적당을 아는 사람은 겨울에 폭설이 내린다고 해서 놀라지 않고 여름에 태풍이 불어온다고 해서 당황하지 않는다. 적당한 일들이 생길 뿐이다.

자신이 해야 할 고유한 임무를 알아야 그 사람이 적당해질 수 있다. 기원전 5세기에 등장한 그리스 비극작가들은 비극적인 인간들을 다루었다. 인간이 비극적인 이유는, 권력, 명예, 혹은 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자기인식 부족’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길의 존재를 모를 뿐만 아니라, 그 길을 찾으려 애쓰지도 않는다. 한 개인이나 한 사회가 불행한 이유는 그 무식에서 출발한다. 그들은 주변 인간들의 갈채와 칭찬에 울고 웃는다. 자신이 해야 할 한 가지를 찾지 못한 사람들은 다음 세 가지 증상에 시달린다.

첫째는 ‘오만傲慢’이다. 오만은 인생이란 연극무대에서 자신이 아닌 역할을 맡아, 그 역할의 사람인척 할 때 생기는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다.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감정인 우울憂鬱은 오만의 쌍둥이다. 오만한 자는 자신에게 유일무이한 거룩한 역할을 아직 찾지 못한 자들에게 쉽게 찾아오는 감기와 같은 증상이다. 자신의 역할이 아니기 때문에, 그 역할에 집중하거나 몰입할 수 없다. 그래서 불행하다. 행복은 자신에게 적당한 역할에 몰입할 때 나오는 신명이 나는 감정이다.

둘째는 ‘아둔’이다. 아둔은 마치 인생이란 축구경기에서 자신의 포지션을 찾지 못해 헤매는 상태다. 내가 골키퍼인데, 골대를 버려두고 센터포드인 척하는 선수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태곳적부터 정해진 고유한 임무가 있다. 그것을 모르는 것이 아둔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아둔을 그리스어로 ‘아테atē’라는 단어로 표현하였다. 아테는 장님처럼 자신에게 다가오는 위험을 감지하지 못한다. 아둔은 눈에 검은 안대를 대고 고속도로 길 위에 서서 길을 찾는 어리석음이다.

셋째는 ‘복수復讎’다. ‘복수’라는 그리스어 ‘네메시스’nemēsis의 심층적인 의미는, ‘자신의 오만과 아둔으로 인해 만들어진 자발적인 피해’다. 복수는 누가 나에게 가한 폭력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초래한 자해행위다. 그리스 테베의 왕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친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해서 자식을 낳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가 자살하기 위해 사용한 커다란 브로치로 자신의 눈을 찔러 장님이 된다. 이런 행위가 ‘네메시스’ 즉 복수다. 어리석은 자는 인생의 불행을 남 탓으로 돌리자만, 지혜를 구하는 자는 자신에게 다가온 불행을 자기 탓으로 돌리고 자신을 성찰한다.

‘메덴 아간’이란 말은 자신에게 적절하고 적당한 것을 매순간 묵상하라는 경고다. 플라톤의 저작 <카르미데스>에서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의 삼촌인 카르미데스, 그리고 플라톤의 사촌인 크리티아스와 대화한다. 카르미데스는 절제란 ‘조용히’라고 말하고 크리티아스는 절제를 ‘자기이해’라고 말한다, 소크라테스는 크리티아스의 정의에 매료되어 지혜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자신이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절제는 자기-자신을 아는 것’(<카르미데스> 164d)이라고 말한다. 절제는 자신을 1인칭이 아니라 3인칭으로 두려는 지적인 훈련이며, 그 3인칭이 된 자신을 가만히 응시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가려내는 용기다.

내게 온 건강을 너무도 당연히 여긴 내 오만과 아둔함이, 나를 무리로 몰아넣었고 나에게 감기라는 복수를 선물하였다. 자신의 몸을 살펴 건강을 유지하는 것은 보람된 하루를 보내기 위한 조건이다. 델피 신전에 새겨진 ‘무리하지 말라’가 생각나는 아침이다.

<다니엘이 사자 굴에서 바빌론 왕에게 대답하다>영국 바로크시대 화가 브리톤 리비에르 (1840–1920) 유화, 1890, 120.5 cm x 187.9 cm 영국 맨체스터 미술관<다니엘이 사자 굴에서 바빌론 왕에게 대답하다>영국 바로크시대 화가 브리톤 리비에르 (1840–1920) 유화, 1890, 120.5 cm x 187.9 cm 영국 맨체스터 미술관


<필자 소개>
고전문헌학자 배철현은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셈족어와 인도-이란어를 전공하였다. 인류최초로 제국을 건설한 페르시아 다리우스대왕은 이란 비시툰 산 절벽에 삼중 쐐기문자 비문을 남겼다. 이 비문에 관한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인류가 남긴 최선인 경전과 고전을 연구하며 다음과 같은 책을 썼다. <신의 위대한 질문>과 <인간의 위대한 질문>은 성서와 믿음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었다. 성서는 인류의 찬란한 경전이자 고전으로, 공감과 연민을 찬양하고 있다. 종교는 교리를 믿느냐가 아니라,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고, 연민하려는 생활방식이다. <인간의 위대한 여정>은 빅히스토리 견지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추적하였다. 이 책은 빅뱅에서 기원전 8500년, 농업의 발견 전까지를 다루었고, 인간생존의 핵심은 약육강식, 적자생존, 혹은 기술과학 혁명이 아니라 '이타심'이라고 정의했다. <심연>과 <수련>은 위대한 개인에 관한 책이다. 7년 전에 산과 강이 있는 시골로 이사하여 묵상, 조깅, 경전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블로그와 페북에 ‘매일묵상’ 글을 지난 1월부터 매일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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