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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천박한 정치

아돌프 아이히만(1906~1962)은 독일 나치 정부에서 SS(나치친위부대) 유대인 정책 책임자로 일하다 게슈타포(비밀경찰) 소속으로 유대인의 폴란드 수용소 이송을 담당하는 최고 책임자로 히틀러에 충성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 난 후 이탈리아를 거쳐 아르헨티나로 도피해 살다 1960년 이스라엘 정보기관에 체포됐다. 아이히만은 이스라엘에서 다른 나치 전범들처럼 대량 살인의 죄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1962년 교수형으로 생을 마감했다.

한나 아렌트는 그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을 서술하면서 악은 어떻게 발현하는 지를 설명한다.

아이히만은 사실 나치당에 가입하기 전까지는 자신의 삶의 목적이 뚜렷하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러다 SS에서 중요한 임무를 맡으면서 점점 히틀러에 빠져들었다. 게슈타포로 옮긴 후에는 유대인 폴란드 수송의 책임을 성실하게 수행했다.

아이히만의 진술에 따르면 그는 자신의 임무가 잘못된 것인지 몰랐던 듯 보인다. 오히려 자신이 폴란드로 유대인들을 수송한 것이 유대인에게 선을 행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이히만은 유대인 정책을 결정할 권한은 없었다. 위에서 결정한 것을 이행하는 실무자일 뿐이다.

아렌트의 해석이 흥미롭다. 아이히만을 비롯한 나치 전범들이 죄를 저지른 것은 그들이 사악해서가 아니라 천박하기 때문이다. 아렌트에 따르면 홀로코스트에 개입한 전범들 중에는 마지막에 히틀러 축출 세력에 가담한 이들이 많았는데 그들 조차도 홀로코스트를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정치적 목적에 의해 히틀러를 축출하려고 했지만 그들의 정신(혹은 영혼)은 이미 히틀러의 말과 행동에 지배 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렌트에게 있어 ‘천박함’이란 스스로가 사유의 주체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뜻한다. 나치전범들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홀로코스트를 옹호할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 사유하기를 포기하고 나치즘과 자신을 일치시켰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아렌트는 “사유하지 않는 것은 천박한 것이고, 이런 천박함이 범죄의 근원”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생각이란 걸 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행동을 어떤 다른 이념이나 기준과 일치시키려 하는 데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행위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한다. 그러나 이는 자신의 행위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도구에 불과할 뿐 다른 사람의 행위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못한다.

아렌트식으로 얘기하면 이렇게 될 때 공동체는 무너지거나 전체주의로 나아가게 된다. 정치는 '스스로 사유할 줄 아는 사람'이 공동체 내에서 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정치의 목적은 합의에 이르는 것이다. 이 합의는 스스로 생각하는 개인의 말이나 행위를 동등한 권리로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공동체는 이런 생각하는 사람 간의 협의와 합의에 의해 유지된다. 여기에 사적인 이해관계가 들어갈 틈은 없다.

아렌트가 이상가, 몽상가로 불리는 지점이 여기다. 현실정치를 매일 마주하는 우리에게 아렌트가 말하는 정치는 이룰 수 없는 꿈일 뿐이다.

현실정치 얘길 하자. 강남에 재개발 아파트에 투자해 몇 배의 시세차익을 낸 정치인이 “왜 정부가 집값을 못 했냐”고 질책하는 게 현실정치다.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강남4구’를 외치며 편가르기를 하던 정치인은 서울시장이 되기 위해 ‘강남’ ‘강북’이라는 말을 없애겠다는 공약을 내세운다.

자신은 재산 축소신고로 벌금형을 선고 받았음에도 당선무효형이 아니라는 걸 면피삼아 이미 선거법 위반혐의에 대해 무죄까지 받은 정치인을 공격하는 게 현실정치다.

정당의 대표가 당내 성추행 사건으로 대표직에서 물러날 때 당내 비슷한 사건에 대해 침묵하거나 사과를 미루던 정당들이 ‘경악스럽다’고 비난할 수 있는 게 현실정치다. 음주운전, 폭행, 부동산 투기, 기타등등. 온갖 범죄가 하루가 멀다하고 벌어지는 게 현실정치다.

현실정치에서는 순수함이라는 게 들어설 틈이 없다. 모든 게 정략적이다. 정치인은 국회의원 배지를 다는 게 최고의 목표이고 정당은 정권을 창출하는 게 목적이다. 이 목표를 위해는 수단과 방법은 중요치 않다.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추거나 생각을 강요 받는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거나, 생각을 강요 당하기만 하는 게 현실정치다. 이런 천박한 정치가 국민을 피곤하게 한다. 이런 천박함이 바뀌지 않으면 국민의 암울한 미래도 바뀌지 않는다.

황의신 경제에디터 phi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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