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IB’…30년 한우물 CEO들의 고군분투

정영채, 코로나에도 해외 IB ‘빅딜’ 따내
해외 네트워크 강화에 속도, 비중 10% 목표
정일문은 전통 IB에 주력…해외 딜은 전무

30년 가까이 증권업계 IB(투자은행)에서 경험을 쌓아온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과 정일문 한국투자증권 사장. 코로나19(신종 바이러스감염증)로 글로벌 투자가 사실상 무산돼 애물단지로 전락한 IB부서를 이들이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 이목이 집중된다. 즉 올해는 이들의 IB 역량도 함께 판가름날 전망이다.

◇해외투자 사실상 중단인데…빅딜 체결로 IB 역량 증명 = 코로나19 여파가 증권업계에 여전히 덮치고 있음에도, NH투자증권의 정영채 사장은 글로벌 ‘큰 손’들과 손잡고 총 10조원 규모의 천연가스 딜을 따내 ‘IB 대부’이름값을 톡톡히 해냈다.

NH투자증권에 따르면 아랍에미리트(UAE)의 아부다비석유공사(ADNOC)가 보유한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지분 49%를 인수하는 컨소시엄에 참여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투자 규모는 총 80억달러(약 9조8000억원)로, 국내 증권사가 투자한 인프라 딜 중 역대 최대 규모였다.

당시 증권업계에서는 ‘IB 파워피플’로 불리는 정영채 사장을 대표로 내세웠던 NH투자증권의 ‘신의 한 수’가 엿보인다고 평가했다.

한국형 골드만삭스 육성 프로젝트라는 명목 아래 '초대형 IB 시대' 개막을 쓴 증권업계는 IB출신의 대표들을 수장으로 내세우기 시작했다. NH투자증권이 그 포문을 열었는데 정영채 사장을 발탁하면서 본격적인 'IB 출신 CEO 전성시대'가 펼쳐졌다. 그는 30년 넘게 투자금융 관련 분야에서 일한 만큼 국내 투자금융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꼽힌다.

정영채 사장은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해외 네트워크 강화 전략에도 속도낼 방침이다. 작년 기준 NH투자증권 전체 순이익 가운데 해외사업 비중은 7.4%로 집계됐는데, 이대로라면 1~2년 이내 10% 돌파는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 사장이 취임하기 전이었던 2017년에는 해외사업 비중이 겨우 2.8%에 그쳤는데, 그가 취임하고 나서 고속 성장을 이어간 것이다.

작년 해외법인 실적은 홍콩 법인(328억원)과 인도네시아 법인(63억원)의 IB 부문이 성장을 견인한 것으로 보인다. NH투자증권은 현재 해외 현지법인 6개소(홍콩, 뉴욕, 인도네시아, 베트남, 북경, 싱가포르)와 사무소 2개소(상해, 런던)를 운영하고 있다. 일찌감치 중국현지법인과 상해사무소를 설립하고 홍콩현지법인을 아시아 중심 거점인 헤드 오피스로 격상시키는 등 아시아 IB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코로나 이후 해외 딜은 전무…‘전통 IB’로 승부수 둬 = 정영채 사장에 이은 증권업계 IB 출신 두 번째 대표는 바로 한국투자증권의 정일문 대표다. 그간 한국투자증권은 12년간 조직을 이끌어온 유상호 부회장이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고 정일문 사장이 작년 초 취임한 것이다.

그 역시도 약 27년간 IB 부문에서 활약한 IB통으로, 정영채 사장 등과 함께 국내 투자은행(IB) 시장의 살아있는 역사로 평가되고 있다. 대기업 계열사들과 주로 IB거래를 하지 못했던 한국투자증권은 2005년 그가 IB본부장을 맡은 이후에야 거래를 틀 수 있었다. 당시 LG디스플레이, 삼성생명, 삼성카드 등 대기업 상장을 그가 관여했다.

정일문 사장 역시 취임하자마자 ‘해외 투자’ 강조에 나섰고, 그의 경영 능력 역시 증명됐다. 그가 사장에 오르기 전인 2017년에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 본사 매입 자금 중 일부(900억원)를 개인 투자자들에게 공모펀드 형태로 팔았는데, 이것이 국내 최초의 ‘해외 부동산공모펀드’였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 삼아 작년에는 한국투자증권이 인수한 미국 뉴욕 맨하탄 ‘195 브로드웨이 빌딩’을 2000억원 규모 공모펀드 형태로 시장에 공개하기도 했다. 해외 부동산 공모펀드 중 최대 규모였다.

다만, 코로나 이후의 그의 해외 IB 실적은 아직 전무한 상태다. 대신 그는 ‘전통 IB’인 ECM(주식자본시장, IPO 및 유상증자 등)부문에 주력하며 IB 실적 끌어올리기에 힘쓰고 있다.

실제 정일문 사장은 최근 기업공개 주관실적 쌓기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현재까지 한국투자증권을 주관사로 선정한 기업은 에스씨엠생명과학, 엘에스브이코리아, 신도기연, 솔트룩스, 티에스아이 등이다. 모두 한국거래소의 상장 예비심사를 통과한 상태로 올해 안에 상장이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이 외에도 다음소프트, 와이더플래닛, 피에이치파마, 더네이쳐홀딩스, 티앤엘 등의 상장주관도 맡고 있다.

하반기에 기업공개 시장에서 무서운 뒷심을 발휘하자, 올해는 NH투자증권을 뛰어넘을 것이란 말도 나온다. 한국투자증권은 작년 IPO시장에서 2위를 기록했다.

일각에서는 한국투자증권이 올해 1분기 순적자 1300억원 가량이나 봐 정 사장으로서 실적 부진의 만회를 서둘러야 할 필요성이 커져, 이같이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다른 한편에서는 정 사장이 한국중소기업학회, 코스닥발전협의회 등에서 이력을 쌓아온 만큼 애당초 벤처기업시장에 관심이 있었던 인물이었을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김소윤 기자 yoon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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