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영 기자
등록 :
2020-01-19 18:37

수정 :
2020-01-20 10:17

[신격호 별세]껌으로 시작해 100조 기업 재계 5위 신화

단돈 83엔 들고 일본 건너가 재계 5위 롯데그룹 일궈
한국 식품·관광·유통 거물 ‘롯데’ 신화 만들어
두 아들 경영권 분쟁으로 말년 순탄치 못해

그래픽=박혜수 기자

신격호(辛格浩) 롯데 명예회장이 19일 99세를 일기로 영면했다. 그는 맨 손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껌 사업을 시작해 현재의 롯데를 일궈낸 신화의 주인공이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잿더미 위에서 껌을 팔기 시작한 지 70년 만에 한국 재계 5위, 연매출 100조원의 롯데그룹을 키워냈다.

◇단돈 83엔 들고 일본으로 건너간 청년 신격호=1921년 경남 울산에서 5남 5녀의 첫째로 태어난 신 명예회장은 41년 83엔을 들고 혼자 일본으로 건나가 신문과 우유 배달 등을 하며 고학 생활을 했다. 1944년 선반(절삭공구)용 기름을 제조하는 공장을 세우면서 사업을 시작했으나 2차 대전에 공장이 전소하는 등 시련을 겪었다.

1945년 해방이 되자 일본에 머물던 한국인이 대거 귀국했지만, 신격호는 ‘나를 믿고 돈을 빌려준 사람을 두고 갈 수는 없다’며, 우유 배달을 하고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해 사업 밑천을 마련했다. 그는 당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어떤 경우에도 배달 시간을 어겨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배달 시간이 정확하다는 소문이 나면서 신 명예회장 앞으로 우유 배달 주문이 크게 늘었다.

이렇게 모든 돈으로 그는 1946년 도쿄에 '히카리특수화학연구소'라는 공장을 짓고 비누 크림 등을 만들어 팔았다. 사업이 잘 되어 1년 반 만에 빚을 다 갚았다. 신격호는 자신을 믿고 기다려 준 하나미쓰에게 빌린 자금을 모두 돌려주면서 고마움의 표시로 집까지 한 채 사 주었다고 한다.

이후 승승장구한 신격호 명예회장은 1948년 자본금 100만엔, 종업원 10명의 회사를 설립하고 ‘롯데’ 간판을 처음으로 내걸었다. 껌 회사인 ㈜롯데를 창업하면서 '롯데 신화'의 막을 올렸다.

회사 이름 ‘롯데’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나오는 여주인공 ‘샤롯데’에서 따왔다. 한때 작가의 꿈을 키우기도 했던 신격호 명예회장이 롯데가 샤롯데처럼 사랑받는 기업이 되기를 바랐던 것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1961년 신 명예회장은 초콜릿 시장이 커질 것을 예감하고 과감하게 투자해 유럽에서 기술자와 설비를 들여왔다. 그의 예감은 적중했고, 이후 캔디, 비스킷, 아이스크림, 청량음료로 사업 영역을 확대했다. 최고의 경쟁력을 갖출 때까지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경영 방침은 롯데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됐다. 식품업으로 자금을 마련한 그는 롯데 상사, 롯데 부동산, 롯데 물산, 주식회사 훼밀리 등을 세우며 한때 일본의 10대 재벌 자리까지 올랐다.

일본에서의 사업이 자리를 잡자 신 총괄회장은 고국으로 눈을 돌렸다. 신 명예회장은 1966년 한·일 수교로 투자의 길이 열리자 사업을 한국으로 확장해 1966년 롯데알미늄과 1967년 롯데 제과를 설립했다. 롯데는 쥬시후레쉬, 스피아민트, 빠다쿠키 등 히트 상품을 앞세워 빠르게 성장했다. 음료·빙과회사를 인수하는 한편, 관광·유통·건설·석유화학 사업에도 진출했다.

◇고국으로 돌아와 ‘롯데’ 시대 개막…유통 거인 ‘우뚝’=1965년 한·일 수교로 양국간 경제 교류가 활발해지자 신 명예회장은 조국에서 사업 기회를 잡기로 했다. 1967년 한국으로 돌아와 롯데제과를 설립하며 ‘한국롯데’ 시대를 열었다. 조국에 기업을 설립하겠다는 신 명예회장의 꿈과 해외 자본으로 국내 산업을 일으키고자 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열망이 맞아 떨어진 결과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외국인투자기업에 최소 5년간 취득세, 소득세, 법인세 등을 면제해주는 외자도입특례법을 제정하며 재일교포 신격호가 이끄는 롯데에 파격적인 특혜를 제공했다.

이는 롯데에게 쏟아진 특혜 세례의 시작이었다. 이후 1973년 롯데가 호텔을 짓기 위해 당시 반도호텔과 국립중앙도서관 부지를 매입할 때도, 1980년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자리에 있던 산업은행을 사들일 때도 정부의 특혜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1988년 부산 부전동 롯데호텔 부지 5,800평을 사들일 당시 자본금의 99.96%가 일본인 소유란 이유로 외국인투자촉진법을 적용 받아 취득세와 등록세 191억원을 면제받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한일 양국을 오가며 롯데그룹 현해탄 경영을 시작한 신 명예회장은 1973년 호텔롯데, 롯데기계공업, 롯데파이오니아를 설립하고 이듬해 롯데상사를 세운 뒤 훗날 롯데칠성음료가 되는 칠성한미음료를 인수했다. 1976년 호남석유화학(현 롯데케미칼) 인수에 이어 1978년 삼강산업(현 롯데푸드)과 평화건설(현 롯데건설)를 인수했고, 롯데햄·롯데우유(현 롯데푸드)를 설립하는 등 신 명예회장의 사업 확장은 파죽지세였다. 1979년 호텔롯데에 이어 롯데쇼핑센터(현 롯데백화점 본점)을 준공하며 당시 국내에서 불모지나 다름없던 유통·관광 산업을 선점했다. 롯데는 1983년 24개 계열사에 2만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한국 10대 재벌그룹이 됐다.

신 명예회장은 관광산업에 특히 의욕이 넘쳤다. 국내에 세계적인 수준의 호텔을 짓기 위해 전세계 유명 호텔들을 답사했고, 건물 설계와 인테리어까지 꼼꼼히 확인했다. 공사 현장도 수시로 방문하며 안전 문제를 철저하게 챙겼다. 그는 일본 롯데가 번 돈을 호텔롯데를 통해 국내에 대거 투자했다. 호텔롯데의 대주주가 일본롯데홀딩스인 것도, 롯데지주가 생기기 전까지 호텔롯데가 지주회사 역할을 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지상 123층, 높이 555m의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는 신 명예회장이 30여년간 품어온 숙원사업이었다. 그는 “외국 관광객들에게 계속 고궁만 보여줄 수는 없지 않냐”며 “외국인들이 찾아오고 싶어할 만큼 세계에 자랑할 만하고 후세에 길이 남을 수 있는 건축물을 세워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유통 분야에서도 신 명예회장의 투자는 선구적이었다. 1979년 개장한 소공동 롯데백화점의 규모(지하 1층~지상 7층)는 기존 백화점의 2~3배에 이르렀고, 영세 백화점이 난립한 당시 유통업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선진국 백화점에 견줄 만큼 질 측면에서도 독보적이었다.

신 명예회장은 기간산업에도 관심이 많았다. 호남석유화학 인수 성공으로 그는 날개를 달았다. 여천단지에 공장을 지어 몇 년 산업계에 필수인 화학제품 상업생산을 시작한 호남석유화학은 2012년 롯데케미칼로 사명을 바꿔 그룹의 든든한 한 축으로 성장했다.


식품-관광-유통-건설-화학 등에 걸쳐 진용을 갖춘 롯데그룹은 1980년대 고속 성장기를 맞았고, 기네스북인 인정한 ‘세계 최대 실내 테마파크’ 서울 잠실 롯데월드도 1989년 문을 열었다. 신 명예회장은 1990년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집계한 세계 부자 순위에서 9위에 오르기도 했다.

1990년대에도 신 명예회장은 편의점(코리아세븐), 정보기술(롯데정보통신), 할인점(롯데마트), 영화(롯데시네마), 온라인쇼핑(롯데닷컴), SSM(롯데슈퍼), 카드(동양카드 인수), 홈쇼핑(우리 홈쇼핑 인수) 등으로 계속 사업 영역을 넓히며 롯데를 재계 서열 5위로 끌어올렸다.

◇형제간 경영권 다툼에 말년 고초=맨손으로 시작해 한국과 일본에 ‘롯데 왕국’을 세웠지만, 그의 말년은 순탄치 않았다.

신 명예회장은 2011년 2월 차남 신동빈 회장을 한국 롯데그룹 회장에 임명하면서 사실상 경영 2선으로 물러났다. 이후 2015년 후계구도에서 밀리며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자리에서 쫓겨난 장남 신동주가 아버지를 등에 업고 동생 신동빈을 공격하며 ‘경영권 분쟁’이 시작됐다. 아버지의 뜻과 후계구도를 둘러싸고 두 아들 간 주장이 엇갈리면서 신 명예회장의 건강과 판단력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이후 신동빈이 광윤사 이사직에서 해임되고 롯데면세점 롯데월드타워점 사업권을 잃으면서 신동빈의 경영권이 흔들리는 듯했으나, 2016년 주주총회에서 신동빈이 주주들의 지지를 얻으면서 경영권 분쟁은 신동빈 측의 승리로 굳어졌다.

왕자의 난 과정에서 롯데 대표이사 회장직에서 해임된 신 명예회장에 대해 2017년 대법원이 한정 후견인을 지정함에 따라 다시금 건강 악화 문제가 불거졌다. 그 해 열린 일본 롯데홀딩스 주총이 신 명예회장에 대해 이사직 재선임 불가를 결정하면서 롯데의 신격호 시대는 막을 내렸다.

이지영 기자 dw0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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