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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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4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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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경 별세] 화학·전자 산업 중흥…‘강토소국 기술대국’ 실현

컬러TV·공냉식 에어컨·전자식 VCR·슬림형 냉장고 선봬
최초 제품 출시 이후 생산시설 확장으로 산업 성장 주도
“어디든 달려가 배우고 철저하게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1999년 10월 LG화학 여수공장을 방문해 시설현황을 살피고 있는 구자경 명예회장. 사진=LG 제공

14일 숙환으로 별세한 구자경 LG 명예회장은 대한민국 화학과 전자 산업 중흥을 이끈 재계 대표 인물로 꼽힌다.

19인치 컬러TV, 공냉식 에어컨, 전자식 VCR, 슬림형 냉장고 등 국내 최초 제품을 잇달아 선보이고 생산시설을 확장하며 화학∙전자 산업 성장을 주도했다.

LG 창업주인 연암 구인회 회장이 62세 일기로 1969년 12월 31일 타계하면서 구 명예회장은 45세가 되던 1970년 1월 9일 LG그룹 2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공장에서 20년간 생산 현장을 지키다가 서울로 근무지가 바뀐 지 불과 1년 수 개월 만에 부친의 유고로 회장 자리에 올랐다.

이후 구 명예회장은 두 차례의 석유 파동과 나라 안팎의 어려운 경영 환경을 극복하면서 화학과 전지 사업 강국에 속도를 냈다.

구 명예회장이 세운 ‘강토소국 기술대국’ 신념은 기술 연구개발에 승부를 걸어 우리나라 화학·전자 산업의 중흥을 이끌자는 뜻이었다.

실제로 이는 LG그룹 화학과 전지 분야 연구개발 열정으로 이어져 70여개의 연구소 설립으로 실현됐다.

구 명예회장 재임 기간 1975년 금성사 구미 TV생산공장에 이어 1976년에는 냉장고, 공조기, 세탁기, 엘리베이터, 컴프레서 등의 생산시설이 포함된 국내 최대의 종합 전자기기 공장인 창원공장이 건립됐다.

창원공장 준공식 당시 구 명예회장은 “이 공장이 서고 보면 냉장고의 컴프레서 제품까지 완전 국산화될 것이고 기종도 다양하게 개발하게 될 것이므로 전기 부문의 새로운 비약의 계기가 마련된 것”이라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1983년부터 1986년 말까지는 미래 첨단기술시대에 대비해 컴퓨터와 VCR 등을 생산하는 평택공장을 구축하며 오늘날 전자 산업 강국의 기틀을 닦았다.

화학분야에서는 1970년대 울산에 하이타이(가루비누), 화장비누, PVC(폴리염화비닐)파이프, DOP(프탈산디옥틸), 솔비톨 등 8개의 공장을 잇달아 건설하면서부터 종합 화학회사로의 발돋움을 본격화했다.

또 전남 여천 석유화학단지에 197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까지 PVC레진, ABS(아크릴로니트릴부타디엔), 납사(나프타) 분해공장 등을 구축해 정유(당시 호남정유)부터 석유화학 기초유분과 합성수지까지 석유화학 분야의 수직계열화를 완성했다.

럭키 여천공장 가동은 1970년대까지 가공산업 위주였던 국내 화학산업을 석유화학 원료산업으로 전환하는 이정표로 원료의 안정적인 수급이 중요한 석유화학 산업에서 수입에 의존하던 원료를 직접 생산하게 됨으로써 석유화학 산업 발전의 토대를 마련했다.

1980년대 초반에는 늘어나는 제품 수요에 대응하고 전국적 제품 공급을 원활이 하기 위해 한반도의 중간지점인 충북 청주에 치약, 칫솔, 모노륨, 액체세제 등을 생산하는 생활용품 종합공장인 럭키 청주공장을 건설했다.

또 부친인 구인회 창업회장이 플라스틱 사업에 전념하고자 지난 1954년 완전히 철수했던 화장품 사업으로의 재진출을 결정하고 청주공장에 국내 최대 규모의 화장품 공장을 건설하여 창업 당시의 사업영역이던 화장품 사업을 이어가기도 했다.

1980년대 중반에는 한국종합화학의 나주 공장을 인수해 국제규모의 종합화학으로 커나가는 계기를 만들었다. 인수 당시의 시설을 몇 차례 개조하고 증설하여 옥탄올, 이소부탄올, 아크릴레이트 등 석유화학제품의 생산량을 늘려나갔다.

LG그룹에 따르면 구 명예회장은 늘 “우리나라가 부강해지기 위해서는 뛰어난 기술자가 많이 나와야 한다. 세계 최고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서 배우고 거기에 우리의 지식과 지혜를 결합해 철저하게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구 명예회장의 ‘기술 믿음’은 어린 시절 경험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작물을 가꾸는 방식에 따라 열매의 크기와 수확량이 달라지는 것을 관찰하면서 과학과 기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으로 해석된다. 이후 교직생활을 할 때도 구 명예회장은 제자들에게 늘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이유로 LG그룹 회장에 재임하던 25년 동안에도 ‘연구개발의 해’ ‘기술선진’ ‘연구개발 체제 강화’ ‘선진 수준 기술개발’ 등 표현은 달라도 해마다 빠뜨리지 않고 ‘기술’을 경영 지표로 내세웠다.

재계 관계자는 “구 명예회장이 열정을 쏟은 연구개발의 결과로 축적된 기술력 덕분에 끊임없는 신제품 개발과 사업 확장이 가능했다”며 “오늘날 세계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화학 전자 산업의 기틀이 마련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임정혁 기자 d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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