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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화(昇華) ⑭ 마땅

[배철현의 테마 에세이]승화(昇華) ⑭ 마땅

등록 2019.10.08 14:56

수정 2019.10.08 14:57

승화(昇華) ⑭ 마땅 기사의 사진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있다. 대한민국을 구성하는 국민 한명 한명이 선진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다. 애벌레가 고치 안에서 일정한 시간을 보낸 후에 나비가 되듯이, 인간은 과거의 자신을 직시하고 개선하기 위해 자신이 마련한 고치에서 변신을 시도해야한다. 그 변신은 정신적이며 영적인 개벽이다. 필자는 그 개벽을 ‘승화’라고 부르고 싶다. ‘더 나은 자신’을 모색하는 열네 번 째 글의 주제는 ‘미땅’이다.


마땅 ; 인생 연극에서 나만이 할 수 있는 배역은 어떤 것일까


며칠 전부터 산책길 모서리에 우두커니 서있는 커다란 느티나무에 낫이 두 개 꼽혀져 있었다. 내가 지난 9개월 동안 산책길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연장들이라 눈에 금방 들어왔다. 오늘 아침 그 이유를 알았다. 산책길에 종종 만나던 그 농부가 그 낫으로 들깨를 수확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깻잎을 추수하시는 군요. 깻잎이 병충해가 들어 녹색이었다가 연두색으로 변한 것이 아닙니까?” 그는 언제나 내 어리석은 질문에 친절한 웃음을 먼저 짓는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무언가를 묻는 어린 손자에게 짖는 표정이다. “아니에요. 들깻잎이 연두색으로 변하기 시작해야, 들깨가 여물었다는 신호입니다. 연두색으로 변한 깻잎을 자세히 보면 들깨들이 옹골차게 여문 것을 볼 수 있어요.”

농부는 자연의 순환을 정확하게 읽고 있다. 연두색은 그가 추수할 때가 되었다고 알려주는 신의 표식이다. 나는 일주일 전부터 연두색 깻잎 밭을 지나치면서, 병충해가 들어 못쓰게 되었다고 착각하였다. 그는 친절하게 자연의 섭리攝理를 간명하게 설명해 주었다. “이 시점을 놓치면, 깨들이 땅에 떨어져, 기름으로 만들지 못해요. 예수가 사람들에게 “너희는 눈을 가지고 있지만 보질 못하는구나!”라는 한탄이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나는 수십 번 깻잎 밭을 지나쳤지만, 내가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한계, 즉 무식無識에서 나온 잘못된 판단으로, 이것들이 죽어간다고 생각했다. 만일 누가 나에게 그 깻잎의 상태를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내가 매일 아침 그 주위를 걸어 다녀 두 눈으로 확실하게 봐서 아는데, 그 깻잎들은 죽었어.’ 혹은 ‘그 밭은 관리하는 농부가 너무 게을러. 땅 주인에게 말해, 그를 해고시켜야겠어!’라고 말할지 모른다. 나는 농부가 가지런히 기하학적으로 정렬한 들깻잎 단을 보았다. 그것으로부터 나오는 싱그럽고 의젓한 향기를 맡으며 잠시 서있었다. 그는 막 가려는 나에게 무심코 말을 던졌다. “지금 깻잎을 추수하는 것이 마땅해요.”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마땅하다’라는 말을 생각해보았다. ‘마땅’이란 무엇인가? 마땅이란 이 시점에 당연히 내가 해야 하는 일이다. 마땅이란 것은 지극히 사적이어서, 내가 스스로 결정해서 해야 하는 일이다. 마땅이란 자연의 섭리를 읽어내는 능력을 통해 이 사회에서 나만이 할 수 있는 어떤 일에 대한 삶의 태도다. 인생에서 내가 오늘 해야 할 일들은, ‘마땅한 것’과 ‘마땅하지 않은 것’으로 구분된다. 자신이 해야 할 마땅한 것을 찾아, 그것을 자연스럽게 매일 매일 하는 사람만이 행복하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신에게 마땅한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그는 불행하다. 그 이유는 마땅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배운 적이 없어, 다른 사람에게 마땅한 것, 혹은 타인이 원하는 것을 자신의 ‘마땅’으로 착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철학자는 제논(기원전 340-265년)은 ‘마땅’에 대한 개념을 통해 자신의 사상을 발전시켰다. 그는 키프로스 출신으로 스토아 철학의 창시자다. 그는 ‘카쎄콘’kathēkon(καθῆκον)이란 고대 그리스어 단어를 사용하여 ‘마땅’이란 용어를 설명한다. 그는 ‘카쎄콘’을 ‘카타 티나스 헤케인’kata tinas hēkein이라고 풀어 설명한다. 이 어구의 의미는 ‘어떤 사람에게 (당연하게) 내려온 것’이란 뜻이다. ‘카쎄콘’은 어떤 시간과 장소에 처한 사람에게 떨어진 행위다. 이것에 가장 근접한 영어번역은 ‘인컴번트incumbent’다. ‘인컴번트’는 ‘내가 누워 있는 자리(cumbere)에 들어와 나에게 다가온(in) 것’이다. 한 마디로 당연하고 마땅한 것이다.

또 다른 스토아철학자이며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 제6권 26-27행에서 다음과 같이 ‘마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26, “안토니우스라는 이름을 어떻게 쓰느냐?”고 네게 묻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한 자 한 자 일러주기 위해 목청껏 고함을 지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당신은 상대방이 화를 낸다고, 당신도 화를 낼 것입니까?
당신은 한 자 한 자 불러주지 않겠습니까?
이처럼 세상의 모든 마땅한 것’kathēkon(καθῆκον)은 특정한 부분들로 이루어져 있음을 명심하십시오.
이런 부분에 유의하면서, 흥분하거나 남이 화를 낸다고 당신도 함께 화를 내지 마십시오.
당신은 당신에게 부과될 일을 올바른 방법으로 완수하십시오.

27. 자기 본성에 맞고 유일해 보이는 것들을 추구하지 못하게 사람들을 막는 것은 가혹합니다.
사람들이 실수를 저지른다고 당신이 화를 낸다면,
당신은 어떤 의미에서는 사람들에게 화를 그렇게 내라고 허용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분명 자신의 본성에 맞고 자신에게 유익해 보이는 것에 끌리기 때문입니다.


스토아철학에서 ‘마땅’이란 자신의 수준에 맞게, 자신의 본성에 알맞게 행동하는 것이다. 스토아철학자들은 생각하는 사람과 현자들만이 ‘마땅하게’ 행동할 수 있다고 말한다. 생각을 깊이 하지 않는 사람, 한마디로 무식한 사람들은 생존과 감각의 자극을 위해 습관적으로 행동한다. 그들은 이런 행위를 ‘하마르테마타’hamartēmata, 즉 ‘실수失手’ 혹은 ‘죄罪’다.

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보내는 사람은 오늘에 일어나는 일을 다음 셋을 구분한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운동하기’와 같은 ‘마땅한 것’(kathēkonta), ‘부모를 욕하는 것’과 같이 ‘마땅하지 않는 것’ (Para to kathēkon), 그리고 그 중간에 존재하는 ‘자신과 상관이 없는 것’(adiaphora)이다. 나하고 상관없는 것들은, 나에게 마땅하지도 않고, 선하거나 악하지도 않은 것들이다. 상관없는 것들이란 필요이상의 돈, 명예, 혹은 권력과 같은 것들이다.

현자는 자신과 상관이 없는 것들을 분명히 인식하면서, 그것들을 피하고, 자신에게 마땅한 것에 몰입하면서 유유자적한다.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알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의도적으로 자신을 훈련하고 완벽을 추구한다. ‘마땅’이란 개념이 중국과 일본을 통해 ‘도리道理’ 혹은 ‘의무義務’로 번역되어 우리의 어휘가 되었다. 마땅은 자신을 가만히 응시하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현상들을 인식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행하는 자의 아우라다. ‘카쎄콘’이란 그리스 단어는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이 자신에게 맡여진 배역에 당연하게 온전히 몰입하려는 마음가짐이기도 하다. 나는 인생이란 연극에서 어떤 배역을 맡았는가? 나는 오늘 내 배역에 따라 그것에 마땅한 것을 완수할 것인가? 아니 나는 나에게 마땅한 것을 알고 있는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흉상> 독일 프랑크푸르트 리비히하우스 조각박물관 소장<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흉상> 독일 프랑크푸르트 리비히하우스 조각박물관 소장

<필자 소개>
고전문헌학자 배철현은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셈족어와 인도-이란어를 전공하였다. 인류최초로 제국을 건설한 페르시아 다리우스대왕은 이란 비시툰 산 절벽에 삼중 쐐기문자 비문을 남겼다. 이 비문에 관한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인류가 남긴 최선인 경전과 고전을 연구하며 다음과 같은 책을 썼다. <신의 위대한 질문>과 <인간의 위대한 질문>은 성서와 믿음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었다. 성서는 인류의 찬란한 경전이자 고전으로, 공감과 연민을 찬양하고 있다. 종교는 교리를 믿느냐가 아니라,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고, 연민하려는 생활방식이다. <인간의 위대한 여정>은 빅히스토리 견지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추적하였다. 이 책은 빅뱅에서 기원전 8500년, 농업의 발견 전까지를 다루었고, 인간생존의 핵심은 약육강식, 적자생존, 혹은 기술과학 혁명이 아니라 '이타심'이라고 정의했다. <심연>과 <수련>은 위대한 개인에 관한 책이다. 7년 전에 산과 강이 있는 시골로 이사하여 묵상, 조깅, 경전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블로그와 페북에 ‘매일묵상’ 글을 지난 1월부터 매일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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