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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영 기자
등록 :
2019-07-08 07:38

[유통 뒷담화]국내 잎담배 농가의 말못할 고민

그래픽=박혜수 기자

‘연초’로 불리는 궐련 담배는 담뱃잎으로 만듭니다. 뚝 잘라보면 끈적한 액체가 나옵니다. 그게 니코틴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담배 농사를 지은지 100년이 훌쩍 넘었네요. 농가에서는 1년 중 가장 뜨거운 6~8월 담뱃잎을 수확해 담배 회사에 팝니다.

그런데 우리 농가들은 오래전부터 말못할 고민거리가 있다고 합니다. 잎담배를 사주는 담배회사 때문인데요.

우선 국내에서 국산 담뱃잎을 살 수 있는 회사는 KT&G, 한국필립모리스, BAT코리아 3곳 뿐입니다. 이들 회사는 우리나라에 제조 공장을 갖고 있습니다.

잎담배 위탁 판매를 맡고 있는 ‘엽연초생산협동조합중앙회(KTGO)’라는 단체를 통해 수매가 이뤄집니다. 국산 담뱃잎을 사려면 반드시 KTGO와의 협의를 거쳐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현재 잎담배는 국내 담배기업 KT&G만이 독점 구매하고 있습니다. 외국계 담배회사도 충분히 살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도 말이죠.

알고 보니 여기엔 KT&G와 잎담배 농가의 이해 관계가 작용하고 있더군요.

우리 농가가 힘들게 수확한 잎담배는 KT&G가 책임지고 전량 사줍니다. 농가 입장에선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한 셈입니다. 유일하면서 최대 고객사(?)인만큼 영향력은 클 수밖에 없습니다. 한 해 잎담배 가격과 경작 면적까지 KT&G와의 논의를 거쳐 결정합니다.

그동안 외국계 담배회사들이 국산 잎담배를 사겠다는 뜻을 수차례 전달 했지만, 농가 측에서 판매를 거부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사고 싶어도 못사는 상황인 것이죠.

사실 농가 입장에서는 잎담배를 수매하는 고객사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KT&G가 독점하던 상황에서 외국계 담배회사가 수매에 참여하게 되면 가격 경쟁을 펼칠 수도 있고, 농가는 더 우수한 경작인을 끌어 들여 품질 제고에 힘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턱대고 결정할 사안만은 또 아닙니다. 덜컥 외국계 담배회사에 국산 잎담배를 판매했다가 KT&G가 등 돌리면 어떡합니까? ‘국산 담뱃잎’은 유일하게 KT&G만 쓸 수 있는 건데 괜히 심기를 건드는 격입니다.

농가의 또 다른 고민은 외국계 회사를 믿을 수 없다는 겁니다. 정말 원료로 사용할지, ‘국산 담뱃잎을 쓴다’라는 마케팅 수단으로만 이용할지 모르겠다고 하네요. 실제 과거 한 외국계 담배회사에 국산 잎담배 판매를 결정했다가 계획을 철회한 적이 있는데, 언론플레이로 시장을 교란시켰다는 게 이유입니다.

그런데도 두 글로벌 기업은 KT&G 핑계를 대며 “국산 담뱃잎 구매보다 훨씬 이전 단계에서 막힌다”고 하네요. 틀린 말은 아니지만, 외국계 담배회사가 우리 농가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한겁니다.

정작 KT&G는 “필요하면 사가라”는 입장입니다. 국산 잎담배를 독점하고 있는 KT&G는 국내 잎담배 농가와의 상생을 위해 전량 구매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2002년 민영화 이후 국산 잎담배에 대한 전량수매 의무가 없는데도 말이죠.

상황이 이렇다보니 국산 잎담배 농가의 고민은 더욱 깊어져만 갑니다. 최근 궐련형 전자담배나 액상 담배가 인기를 끌면서 설 자리 마저 잃어버릴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담배 한 갑 기준 궐련담배에 들어가는 잎담배는 12g인 반면 궐련형 전자담배는 5.5g으로 반절 수준입니다.

이러한 농가들의 고민을 아는지 모르는지 KT&G는 앞으로도 국산 잎담배 전량 구매는 문제없다고 합니다. 궐련형 전자담배의 흥행으로 잎담배 사용량이 줄게 되면 당연히 수입하는 잎담배 규모를 줄이겠다고 하네요. 국내 잎담배 경작 규모 자체가 워낙 작기 때문에 KT&G의 전체 잎담배 사용량이 줄어도 국내에서 충분히 소화할 양은 된다고 장담했습니다.

이미 국산 잎담배 경작규모는 민영화 이후 대폭 줄어든 상황입니다. 이대로 안심하라는 건지, 위협하는 소린지 모르겠네요.

비록 경작 규모는 줄어들고 인구 노령화로 담배 농사를 포기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분명한 것은 담배농사를 새로이 희망하는 분들도 계시다는 겁니다. 안정적인 판로 확보로 농사에만 전념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지금은 국산 잎담배 산업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정당한 경쟁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천진영 기자 cjy@newsw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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