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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혜린 기자
등록 :
2019-04-25 15:59

[행간뉴스]속초 산불 ‘민사 책임’은 지겠다는 김종갑 사장 왜?

김종갑 “형사 책임 없다하더라도 민사책임” 약속
수사 진행 중 사안에 기업 수장 배상 언급 이례적
법조계 “천재지변…한전 배상 범위 제한적일 것”
정부 배상 책임 압박에 한발짝 물러섰단 해석도

사진= 연합 제공

고성ㆍ속초 산불이 발생한 지 20일 만인 24일 오전 김종갑 한국전력공사 사장이 피해 주민들을 찾아 사과했다. 김종갑 사장은 이날 “형사적으로는 책임이 없다 하더라도 민사적 책임은 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같은 김 사장 발언은 기업 사장 발언치곤 이례적이라는 반응이다. 일반적으로 재해의 책임을 언급한다는 자체가 보상 관련 부분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사장은 보상문제에 대해 “현재 경찰 수사가 진행중인 만큼 이 자리에서 섣부르게 보상을 하겠다고 말하진 못한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다만 김 사장은 “한전에서 관리하는 설비에서 산불이 번진 것에 대해 사죄하며 형사적으로는 책임이 없다 하더라도 민사적 책임은 지겠다”고 약속했다.

강원도에 따르면 고성·속초, 강릉·동해, 인제 지역에 발생한 산불로 인해 피해규모가 강릉시 11억2400만원, 속초시 18억4700만원, 고성군 73억6100만원, 동해시 2억3400만원 인제군 8700만원 등 총 106억5300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한전의 과실이 밝혀지더라도 배상 범위는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전신주 관리 주체인 한전 측 과실이 인정돼도 이재민들이 화재 피해를 100% 보상받긴 힘들 것이란 전망이다. 발화와는 별개로, 불이 이렇게까지 확산된 건 천재지변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화재가 크게 번진데는 강한 바람 건조한 날씨가 한 몫 했기 때문에 상당부분 책임이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전 과실로 전신주에서 발화가 이뤄졌다고 해도 이에 따른 피해보상은 아크 불티로 인해 직접 연소된 전신주 주변만 해당될 가능성이 크다. 법원 안팎에서는 한전을 상대로 집단소송이 제기될 경우 최초 발화된 불이 강풍을 타고 실제 피해지역까지 번진 과정에서 한전 측 책임을 규명하는 일이 관건이라고 내다본다.

법조계 관계자는 “넓은 지역에 걸쳐 큰 손해가 발생했기 때문에 인정 범위를 두고 다툼이 있을 것”이라며 “통상의 범위를 벗어난 예견하지 못한 특별손해에 대해선 인정받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현재까지 고성과 속초 산불은 강원 고성 토성면 원암리의 한 주유소 맞은편 전신주에 있던 개폐기 내 전선에서 불꽃이 튀면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당초 산불은 변압기 폭발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해당 장소는 변압기가 아닌 개폐기가 있는 자리였다고 한다. 발생 원인이 개폐기 관리 부실로 결론이 날 경우는 피해자들은 손해배상을 청구 할 수 있다.

물론 관리 소홀 등으로 인한 발화가 아닌 외부 요인에 따른 불가항력으로 불이 난 것으로 판명될 경우에는 한전 측에 책임을 묻기는 어려워진다. 현재 한전은 “개폐기는 자체적으로 불이 날 수 없는 재질로 만들어져 있다. 강한 바람이 불던 상황에서 외부 이물질이 날아들면서 불꽃이 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사실 김종갑 사장은 최근 강원도 산불 피해를 놓고 배상의 책임이 있다는 압박을 점점 크게 받고 있는 상황이다. 화재 당시 해외 출장 중이던 김 사장은 귀국하자마자 지난 5일 속초 한전지사 ‘산불피해종합상황실’을 찾았고 10일에도 속초를 찾아 피해지역을 둘러봤다. 하지만 이재민들에 대한 사과나 피해 보상에 관한 얘기는 없어 비판을 거세게 받았다.

진영 신임 행정안전부 장관은 강원도 산불과 관련해 한국전력의 책임이 있다면 배상해야 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진 장관은 지난 11일 정부세종청사 인근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조사 결과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책임이 있다는 결과가 나오면) 배상 책임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전에 대한 국민들의 공분 또한 커지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지난 22일 이번 산불의 책임을 한전에게 물어야 한다는 청원글이 올라왔다. 해당 청원인은 “이번 산불로 인한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해달라”며 “한전이 손해배상을 하지 않는다면 한전의 출연기관이자 여러사업 등의 승인권을 가진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손해배상을 해주고 한전에 구상권을 청구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청원들은 현재 5570명의 동의를 얻은 상태다.

현재 경찰은 한전을 압수수색하는 등 고성·속초 산불의 원인 규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전일 강원지방경찰청은 한전 속초지사와 강릉지사를 압수 수색해 산불 원인과 관련한 사고 전신주의 설치와 점검, 보수 내역 등 서류 일체를 압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산불 원인이 바람에 떨어져 나간 특고압 전선에서 발생한 ‘아크 불티’라고 밝힌 바 있다.

고성 산불은 전신주 개폐기를 관리하는 한국 전력의 책임론이 떠오르고 있는데 관리 부실로 밝혀질 경우 한전은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에 직면할 수도 있다. 한전의 관리소홀 책임이 밝혀질 경우, 임직원은 업무상 실화죄로 형사 처벌 될 수도 있다.

현재 지역민들은 한전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추진 중이다. 고성 산불 피해자들은 ‘고성 한전발화 산불피해 이재민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고, 이번 산불을 ‘인재’(人災)로 규정해 한전과 정부를 상대로 투쟁, 소송을 준비 중이다.

이날 고성 산불 이재민들은 “피해 주민들에게 피부에 와 닿는 방안을 제시하라.경찰 수사 운운하지 마라.이번 산불은 한전 책임이 명백하다”며 즉각적인 손해배상을 촉구하며 반발했다. 한 이재민은 “배상에 대한 모든 약속은 문서로 남겨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 다른 이재민은 “사망자 유족에 대해서는 왜 사과하지 않느냐”고 항의했다.

노장현 고성 이재민 비대위원장은 “비대위의 기본 원칙은 수사결과에 상관없이 전액 배상”이라며 “이 부분이 받아 들여지지 않으면 서로의 길을 가게 될 것”이라고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속초 산불 피해 이재민들 역시 현실에 맞는 보상과 함께 2차 피해 보상도 요구했다.

이에 김 사장은 “사망자 유족들을 만나 사과하고 배상에 대한 모든 것은 서류로 남기겠다”고 말했다. 이어 “비대위와 처음 만나는 오늘 자리를 출발점으로 삼고 어떤 방식으로 대화를 해 나갈 것인지 논의 할 것”이라며 “산불로 생활터전을 잃어버린 이재민들이 하루빨리 일상으로 되돌아 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한전과 피해보상대책위원회는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배상 문제를 논의 중이다. 속초산불피해보상대책위원회 관계자는 “김 사장과 피해 주민들이 만나 배상문제를 이제 논의하기 시작한 만큼 아직까지는 원만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며 “한국전력이 앞으로도 계속 책임지는 태도를 유지할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주혜린 기자 joojoo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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