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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용 “최종현 회장, 식탁의 갈치보고 나라경제 생각한 분”

권오용 “최종현 회장, 식탁의 갈치보고 나라경제 생각한 분”

등록 2018.08.24 09:40

수정 2018.08.24 17:21

강길홍

  기자

권오용 효성고문 - 고(故) 최종현 회장 20주기 특별 인터뷰 權 “경영을 잘해야 나라가 발전한다는 말씀 아직도 생생해” 노태우 전 대통령 사돈지간···이통사 진출때 오히려 불이익직원들과 끝장토론 좋아해···엉뚱한 발언나와도 끝까지 경청최태원 회장, 사회적 가치경영 행보···부친 기업관 영향 클 것

권오용 효성그룹 고문권오용 효성그룹 고문

“최종현이라는 사람은 단순한 경영자가 아니다. 경영을 통해 나라를 발전시키는데 관심이 많았던 특이한 사람이다. 그의 경영 실천방법은 시스템 중시다. 즉흥적 판단이 아니라 시스템에 입각해 판단을 내린다. 나라를 생각할 때는 시장경제, 회사 경영에서는 SKMS(선경경영관리체계)가 고(故) 최종현 회장이 추구한 경영 시스템이다.”

권오용 효성그룹 고문은 고(故) 최종현 SK그룹 회장 20주기를 앞두고 23일 진행한 <뉴스웨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권 고문은 전경련과 금호그룹, KTB, SK그룹을 거쳐 현재 효성 고문으로 일하고 있다. 특히 최종현 회장이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맡았던 시절에 홍보본부장으로 있으면서 가장 지근거리에서 지켜봤던 인물이다.

◇최종현 회장과는 언제부터 알고 지냈고,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나= 1992년에 가까이에서 처음 봤다. 당시 최 회장은 한국경제연구원 원장이었고 나는 홍보과장이었다. 임원들 식사자리가 있었는데 최 회장이 나도 불러 가게 됐다. 다른 임원들이 회장 옆자리를 피하다보니 제일 막내였던 내가 옆자리에 앉게 됐다.

그때 식사 메뉴가 육개장이었다. 내가 ‘회장님은 항상 비싼 음식을 드실줄 알았는데 육개장을 드시네요?’라고 물었더니 ‘고기를 많이 넣어서 먹으면 맛있다’면서 고기랑 밥을 더 챙겨줬던 게 기억난다. 또 그날 식사자리에서는 시장경제에 대한 얘기가 진행됐는데 많이 나왔다. 최 회장이 자신이 생각하는 시장경제에 대한 말할 때 굉장히 해박하다는 느낌을 받았던 게 생각난다.

◇최종현 회장이 전경련 회장으로서 김영삼 정부와 갈등이 많았나=문민정부의 대기업 정책은 ‘업종 전문화’와 ‘소유분산’ 두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대기업 지분을 국민들과 나눠 가지고, 문어발 경영을 하지 말고 전문화하라는 것이다.

시장경제를 중시하는 최 회장으로서는 강한 반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지분구조나 사업다각화는 시장경제 관점에서의 경영방식에 따라 결정할 일이지 법으로 강제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같은 생각을 드러내자 언론에서는 전경련이 대통령에 반기를 들었다고 보도했다. 최 회장은 ‘기업이 어떻게 이기겠냐’며 결국 정부에 사과했지만 자신의 소신은 변함없이 견지했다.

◇최종현 회장과 김영삼 대통령과의 만남이 자주 있었나=당시 전경련 회장은 대통령을 분기마다 만났다. 또한 김영삼 대통령이 해외순방을 나가면 외국 정부에서 한국기업의 참석 요청이 많았다. 잦은 출장으로 만남도 많아지면서 김영삼 정부와 전경련의 사이도 좋아졌다.

최 회장은 대통령을 만날 때 항상 강조했던 것이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 관점의 국가 경쟁력이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임기 말에 세계화라는 용어를 직접 꺼내들면서 최 회장의 지론을 받아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세계화가 너무 늦었다. 임기 초기에 세계화를 추진했으면 외환위기 사태를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최종현 회장이 ‘쌀 시장 개방’ 등을 주장하면서 농어민들의 지탄도 받지 않았나=최 회장이 집에서 밥을 먹는데 식탁에 갈치가 올라왔다고 한다. 그런데 사모님이 갈치 값이 너무 올라서 자주 먹기 부담스럽다고 얘기자, 궁금한 것을 참지 못하는 최 회장은 직접 갈치 가격을 알아봤다고 한다. 국산 갈치는 한마리에 2만원이 넘었지만 수입산은 몇천원 수준이라는 사실을 알고 ‘갈치면 다 같은 갈치지 한국산이라고 다른 맛이냐’며 시장이 개방돼야 갈치도 마음대로 먹을 수 있으니 국민들에게 더 효율적이라는 얘기를 했다고 한다. 물론 농어민들에게 피해가 갈 수 있지만 이는 농어민을 위한 대책을 따로 만드는 식으로 접근해야지 시장개방을 막으면 더 많은 국민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고 강조했다.

◇최종현 회장이 전경련 회장을 3연임하면서 고민한 것을 봤나=당시에는 회장단이 추대하면 대부분 회장직을 수락하는 분위기였다. 최 회장은 3연임하면서 독선적으로 한다는 이미지 없었기 때문에 회장단의 신뢰도 높았다. 지금의 전경련과 비교하면 그때는 재계 단체로서 화목한 분위기였다.

전경련의 개혁작업도 추진했다. 대표적인게 ‘기조실장 협의회’다. 전경련은 오너 경영인들 단체였지만 최 회장이 기조실장 협의회를 만들고 전문경영인이 참여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또한 후임자를 미리 정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을 차기 회장으로 추대하고 함께 협조하며 일하기도 했다. SKMS에서 사장의 가장 중요한 직무 가운데 하나로 유능한 후계자를 만드는 것을 꼽는데 전경련에도 SK의 시스템을 도입한 셈이다.

◇노태우 대통령과 사돈이었던 것이 SK그룹에 도움이 됐나=SK그룹은 현직 대통령의 사돈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불이익을 받았다. 실제로 제2이동통신 사업권을 따내고도 반납하지 않았나. SK가 이동통신사업에 진출한 것은 김영삼 정부가 출범한 이후다.

유공(현 SK이노베이션) 인수 때 신군부의 지원을 받았다는 의혹도 있었지만 10년 전부터 준비했던 일이다. 10년 전에는 신군부라는 용어도 없었다. 유공 민영화의 유일한 조건이 안정적으로 원유를 공급받을 수 있는 능력이었는데 국내 기업 가운데 선경이 유일하게 사우디에서 공급 약속을 받고 돌아와 유공 인수자로 선정될 수 있었다.

유공과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이 SK그룹에 인수된 이후 꾸준히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권력에 의존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최종현 회장이 제2이동통신 사업권을 반납하면서 아쉬워하지는 않았나=선경이 제2이동통신 사업권을 반납하자 정부가 전경련에서 협의해 제2이동통신 사업자를 정하라고 했다. 이에 따라 최 회장은 사업권 반납 직후 전경련에서 주요그룹 오너들이 모이는 회의에 참석하게 됐다. 이 자리에서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최 회장에게 “왜 사업권을 따놓고 반납을 하느냐, 해외에 나가 있으면 잠잠해지고 사업권도 지킬 수 있었을 텐데···”라고 농담처럼 말했다.

그랬더니 최 회장이 “다음 정부에 가서 따면된다. 우리는 실력이 있다. 분한 마음은 30분간 심호흡하면서 명상하면 사라진다”고 대답했다. 그런 상황에서 농담을 건네는 정주영 회장이나 아무렇지 않게 응대하는 최 회장을 보면서 크게 사업하는 사업은 다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종현 회장은 직원들과 격이 없이 지냈다고 하는데=최 회장은 경영을 할 때도 항상 토론을 중요시한다. 2~3시간씩 토론을 하는 경우도 많은데 최 회장이 중간에 말을 꺼내는 경우가 별로 없다. 자신이 중간에 얘기하면 그대로 결론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직원들이 아무리 엉뚱한 발언을 해도 끝까지 들었고 토론 마무리에 자신의 생각과 토론 과정을 정리하는 발언을 하는 정도였다.

회의가 길어지면 중간에 졸음을 참지 못하는 사람이 생기기 마련이다. 한번은 회의 자리에 한 부장이 불참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최 회장이 ‘그 사람은 왜 안 왔어? 회의 때마다 자는 놈 있잖아’라고 물었다. 그 얘기를 전해들은 그 부장이 ‘나는 이제 찍혔구나’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SK그룹에서 고위임원까지 했다.

◇최종현 회장은 비싼 술 대신 비교적 싼 편인 ‘조니워커 블랙’을 주로 마시는 소탈한 성격이었다는데=최 회장은 효율과 실용을 중요시한다. 재벌 회장이지만 비싼 30년산 대신 12년산 양주인 조니워커 블랙만 먹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한번은 최 회장과의 술자리에서 ‘12년산만 먹지 말고 30년산도 사달라’고 했더니 ‘30년산과 12년산은 맛은 별 차이는 없는데 가격은 3배 이상 나서 효율이 떨어진다’고 하더라. 30년산은 희소성 때문에 비싼 것이지 맛은 12년산과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최종현 회장 20주기를 맞아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나라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최종현 회장 20주기를 맞으면서 그분에 대한 생각이 더욱 많이난다. 평생을 기업인으로 살아온 묵묵한 사업가이지만 항상 나라경제를 염두에 두고 사업을 추진했다. 아들인 최태원 회장이 사회적가치를 강조하고 있는데 부친인 최종현 회장의 기업관이 승계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SK에 그런 기업문화가 계속 이어지면서 나라경제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위기론이 끊이지 않는 전경련에 대한 생각을 말해달라=예전에는 전경련 회장이 ‘재계의 총리’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컸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일련의 사태를 겪으면서 위상이 많이 떨어졌다.

전경련은 재계를 대표하는 단체로서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요즘은 대한상의가 그런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전경련과는 분명하게 역할 차이가 있을 것이다. 전경련 중심으로 정부·대통령과 대화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어야 한다. 결국 회원사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뉴스웨이 강길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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