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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리 헵번 디자이너’ 위베르 드 지방시 별세···그는 누구?

‘오드리 헵번 디자이너’ 위베르 드 지방시 별세···그는 누구?

등록 2018.03.13 09:06

전규식

  기자

‘오드리 헵번 디자이너’ 위베르 드 지방시 별세···그는 누구?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오드리 헵번이 위베르 드 지방시가 제작한 옷을 입고 있다. 사진=네이버 영화 제공‘오드리 헵번 디자이너’ 위베르 드 지방시 별세···그는 누구?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오드리 헵번이 위베르 드 지방시가 제작한 옷을 입고 있다. 사진=네이버 영화 제공

영국 BBC가 현지시간 12일 패션 디자이너 위베르 드 지방시의 동거인 필리프 보네가 성명을 내고 지방시의 죽음을 공식적으로 알렸다고 보도했다. 지방시는 어떤 디자이너일까?

최경희 한성대학교 교수의 ‘패션 디자이너’에 따르면 지방시는 영화 배우 오드리 헵번과 협업해 다양한 ‘헵번 스타일’의 옷을 제작했다. 지방시와 헵번의 협업은 영화와 패션 간 공생관계의 시초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방시가 패션 디자이너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와 함께 다진 ‘지방시 스타일’은 절제된 단순성이 매력으로 꼽힌다. ‘지방시 스타일’에서 표현된 아름다움에 대한 느낌은 시대를 초월해서 영감을 준다는 평가다.

그는 지난 1927년 프랑스 보베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 파리에 위치한 프랑스 유일 공적 미술교육기관 ‘에콜 데 보자르’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했다.

1940년대 말부터 50년대 초까지는 패션 디자이너 쟈크 파트, 뤼시엘 를롱, 로베르 피게, 엘사 스키아파렐리의 보조 디자이너로 일했다. 이 시기에 ‘뉴 룩’, ‘로맨티시즘’으로 불리는 미적 감각을 익힌 것으로 풀이된다.

1951년에는 자신의 쿠튀르 하우스를 개장한다. 쿠튀르 하우스는 파리의 고급의상조합에 가입된 의상점을 가리킨다. 개장 후 당시 프랑스 일류 모델로 평가된 베티나 그라지아니를 기용해 첫 패션쇼를 개최한다. 그는 당시 발표된 ‘베티나 블라우스’에 대한 호평으로 ‘파리의 신동’으로 불린다.

1954년에는 영화 ‘사브리나’ 촬영을 통해 헵번을 만난다. 지방시는 이때부터 헵번의 사적, 직업적 옷을 대부분 제작한다. 헵번은 ‘화니 페이스’, ‘하오의 연정’, ‘티파니에서 아침을’, ‘샤레이드’, ‘마이 페어 레이디’, ‘뜨거운 포옹’, ‘백만 달러의 사랑’, ‘혈선’에서 지방시의 옷을 입고 출연했다.

헵번이 가슴과 엉덩이를 드러내지 않은 소년 같은 인상으로 당시 소화한 안경테, 모자, 플랫 슈즈, 길이가 짧고 화려하지 않은 오버코트 등은 오늘날 ‘미니멀리즘’이라고 불리는 유행으로 대표된다.

발렌시아가는 지방시의 우상이자 친구다. 지방시의 미적 감각이 성숙할수록 발렌시아가의 것과 유사해져서 단순하고 구조적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두 사람은 1955년 ‘슈미즈’로 불리는 ‘색 드레스’, 1957년 ‘시스 드레스’를 각각 선보였다.

‘지방시 스타일’은 오늘날 형태에서는 고전미, 간결성, 볼륨과 비대칭의 조화를 기본으로 구조적인 형태를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트, 솔기로 구성된 입체형 의복에 어깨 패드, 심지, 안감 등을 넣어서 딱딱하게 정형화된 구조적 형태를 만드는 것이 대표적이다.

지방시의 쿠튀르 하우스는 그의 은퇴 이후 존 갈리아노, 크리스티앙 디오르, 알렉산더 맥퀸, 줄리앙 맥도날드, 리카르도 티시, 오즈왈드 보탱이 이끌었다.

뉴스웨이 전규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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