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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림 - 상식에서 벗어나지 말라

[창업자로부터 온 편지] 이회림 - 상식에서 벗어나지 말라

등록 2017.08.10 14:52

수정 2017.08.29 10:24

이석희

  기자

편집자주
‘창업자로부터 온 편지’는 한국 경제계의 거목으로 불리는 대기업 창업자들부터 미래를 짊어진 스타트업 CEO까지를 고루 조망합니다. 이들의 삶과 철학이 현직 기업인은 물론 창업을 준비하는 젊은 세대에게도 좋은 길잡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회림 - 상식에서 벗어나지 말라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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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회림 - 상식에서 벗어나지 말라 기사의 사진

고려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개성을 중심으로 국내 상업과 국제교역의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개성상인. 이러한 개성상인의 3대 덕목인 ‘신용·검소·성실’을 몸소 실천했던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OCI 창업자인 송암(松巖) 이회림 명예회장의 이야기인데요. 1917년 개성에서 태어난 이 회장은 개성의 송상에서 도제 생활을 거치며 일을 배운 뒤 1937년 포목도매상 건복상회를 설립, 경영자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마지막 개성상인’으로 불렸던 이 회장은 1950년대에 국내 최대 규모의 무역회사인 개풍상사를 설립하며 입지를 넓혔습니다. 이어 1955년 대한탄광을 인수하고, 1959년에는 서울은행 창립에 손을 보태는 등 우리나라 금융 및 무역의 기초를 마련하는 데 큰 몫을 했습니다.

화학 산업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예견했던 이 회장. 1959년 OCI의 전신인 동양화학공업을 세운 뒤 1965년에는 인천 학익동 앞의 바다를 매립해 80만평에 달하는 공단 부지를 조성합니다.

1968년 소다회 공장을 준공하며 화학 산업의 기초 재료인 소다회를 국산화하는 등 우리나라 화학 산업에 크게 이바지했는데요. 이 회장은 이후 40년 간 화학 산업 분야에만 매진합니다.

한 우물만 판 이 회장은 기간산업인 화학 산업 발전에 대한 공로로 1971년에 석탑산업훈장, 1977년에 산업포장, 1979년에 은탑산업훈장, 1986년에 금탑산업훈장을 수여했으며, 세 차례에 걸쳐 대통령 표창을 받았습니다.

이 회장은 개성상인의 전통을 이어받은 사업가답게 국제 교역에도 탁월했는데요. 특히 한국과 프랑스 간의 경제외교활동에서 큰 몫을 해내 1986년과 1991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기사작위와 국민훈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이 회장의 노력으로 동양화학공업은 무기화학, 정밀화학, 석유석탄화학 분야에서 40여종의 다양한 화학제품을 생산하는 글로벌 화학기업 동양제철화학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이 회장은 산업의 기본이 되는 교육과 문화예술의 발전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는데요. 1958년 송암장학회를 설립한 후 사재를 털어 회림장학회를 세우고 장학 사업을 진행합니다.

1979년에는 재단법인 회림육영재단을 설립해 장학 사업과 더불어 학술 문화 연구를 지원하고, 불우이웃을 돕는 데 앞장섰습니다. 또한 1982년에는 인천 송도학원의 이사장으로 취임, 송도 중·고등학교를 운영하며 많은 인재를 배출했지요.

2005년 평생 동안 모아온 문화재 8400여점과 송암미술관 일체를 인천시에 기증, 소중한 문화유산을 공공의 재산으로 남겨 영구히 보존토록 한 것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상식에서 벗어나지 말라.”

화학 산업을 비롯해 사회공헌과 문화예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발자취를 남긴 이 회장. 그가 언제나 강조했던 것은 ‘상식’이었습니다. 상식이란 기본 원리를 의미하고, 그 기본 원리에 충실하면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없다는 뜻이지요.

“선친께서는 개성상인의 덕목을 몸소 실천, 청렴한 기업인으로서 훌륭한 귀감이 됐다.” - 이수영 OCI 회장. ‘송암 100년, 아름다운 개성상인 이회림’ 행사 中

영면에 든 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이회림 회장의 일생이 회자되는 것은, 우여곡절 많았던 우리나라의 20세기를 살면서도 이런저런 유혹이나 욕심에 흔들리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신용‧검소‧성실, 누구나 알지만 아무나 지키지는 않는 그 원칙을 지키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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