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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대통령 만난 재계, 속 얘기 꺼내지도 못했다

[기업하기 힘든 나라]文대통령 만난 재계, 속 얘기 꺼내지도 못했다

등록 2017.08.01 07:38

임대현

  기자

최저임금, 비정규직, 증세 등 일언반구 못해취임 첫 간담회···스킨십 노력 불구 알맹이 없어‘규제-투자’ 거래 피하려다 얻은 것 없이 끝난 만남

7월27일 청와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기업인들 간의 재계간담회. 사진=청와대 제공7월27일 청와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기업인들 간의 재계간담회. 사진=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첫 기업인들과 만남을 가졌다. 격식을 두지 않는 ‘호프타임’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결국 기업에 희생만을 강요하는 자리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지난 7월27·28일 이틀간 청와대에서 기업인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형식은 시한제한도 없는 ‘격식 파괴’로 이루어졌다. 시간은 오후 6시 장소는 청와대 상춘재 앞 녹지원에서 열렸다.

더욱 파격적인 것은 맥주를 마시고 안주를 먹는 호프타임이었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은 대선 기간 더불어민주당 대선예비후보들과 이미 한 차례 호프타임을 보여준 바 있다. 이 장면이 청와대에서도 연출됐다.

간담회 일정은 75분으로 잡혔지만, 이를 훨씬 넘기는 2시간 30분 간 진행되는
열정도 보여줬다. 참석자들은 ‘노타이’ 정장과 비즈니스 캐주얼 등 최대한 편한 복장으로 임했다. 녹지원에서도 참석자들은 대부분 편안한 모습을 보였다.

이날 사용한 맥주는 소상공인이 만드는 수제 맥주다. 문 대통령이 강조한 ‘상생 협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참여한 기업은 자산규모 순으로 정한 14개 기업과 특별 초청대상인 오뚜기 등 15개 기업을 두 그룹으로 나눴다. 27일에는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구본준 LG 부회장, 권오준 포스코 회장, 금춘수 한화 부회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박정원 두산 회장, 손경식 CJ 회장, 함영준오뚜기 회장이 참석했다.

28일에는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신동빈 롯데 회장, 허창수 GS 회장, 최길선 현대중공업 회장, 황창규 KT 회장,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이 각각 참석했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이틀 모두 참석했다. 정부측에선 김동연 경제부총리, 백운규 산업부 장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참석했다. 청와대 참석자는 임종석 비서실장, 장하성 정책실장, 홍장표 경제수석, 반장식 일자리수석, 김현철 경제보좌관 등이다.

대화의 주제는 특별히 정해지지 않았다. 이틀간 간담회는 일자리 창출이나 비정규직 문제, 노조, 최저임금, 규제완화 등이 거론됐다. 주로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과 일맥상통하다.

간담회에 참석한 복수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문 대통령은 경제 성장의 당위성을 언급하면서 “우리가 저성장을 탈출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 기업”이라는 말로 기업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기업인 처지에서는 다소 불편할 수도 있는 노조 문제와 관련한 이야기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참석자 중 일부는 노조 활동으로 인해 기업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는 세간의 지적을 두고 자체적으로 기업과 노조가 상생할 방안을 내놓았다고 전해졌다. 이에 문 대통령은 “이 정부가 ‘더불어 잘사는 경제’를 지향하기 때문에 협력업체들뿐만 아니라 노조, 근로자와 기업이 다 같이 잘사는 경제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내용은 정부 정책 방향에 대해 기업인들에게 협조를 구하는 것이 중점이 됐다. 이는 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계속돼왔던 행사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부는 기업에게 투자를 요구해 왔다.

역대 정권별로 살펴보았을 때,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도 정권 초기에 기업인들과 만남을 가졌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친 기업적인 이미지를 통해 교류를 강화 시키려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창조경제’를 이루겠다며 기업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했다.

문 대통령은 ‘일자리 대통령’을 표방하고 있어 기업들에게 이 같은 요구를 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정책을 통해 일자리 창출에 노력하고 있지만,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명확하다. 최근 추가경정예산안에서 공무원 일자리를 늘리는 것을 유도했지만, 민간부문 일자리는 정책으로 불가능한 영역이다. 따라서 기업들이 나서서 일자리를 창출해줘야 한다.

또한, 상생협력에 대한 요구도 강하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 방향이 근로자들의 환경 개선과 상생, 갑(甲) 문화 철폐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만큼 이와 관련된 요구를 기업인들도 잘 알고 있다.

기업도 이러한 방향에 맞춰 다양한 방안을 내놓았다. 재계에 따르면 유통업계 대기업들은 사드 사태, 성장정체 등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고용 규모를 늘리기로 했다. 새 정부들어서 일자리 확대와 근로자 처우 개선, 정규직 전환 등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정권 초반 고용 규모를 줄여 밉보일 이유가 없다는 판단이다.

또 대부분의 기업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파견직 직원을 직접고용으로 전환하는 추세인 것이다. 이는 재계간담회 일정이 잡히자 더 활발히 이루어졌다.

채용도 더 늘리고 있다. 기업들은 하반기 채용에서 규모를 지난해보다 늘리겠다는 입장을 가지기도 했다. 최근 신세계가 개최한 직업박람회에서 정용진 부회장이 직접 1만명 이상의 고용 창출을 유지하겠다고 선언한 것도 간담회를 앞두고 미리 눈치를 본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상생 협력도 마찬가지다. 대기업들은 간담회 이전에 상생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급급했다. ‘상생 펀드’를 만들기도 하며 하청업체와의 관계를 발전시키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유통업계는 전통시장과 상생하겠다면서 여러 강구책을 내놓기도 했다.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방안을 내놓은 것은 문재인 정부가 규제방안을 만지작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슈퍼리치 증세’라고 불리는 대기업에 대한 증세 방안이다. 기업들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은 상황임은 분명하다.

게다가 ‘재벌 저격수’라 불리는 김상조 공정위원장의 칼끝이 대기업을 향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취임 후 “대기업들에게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시간을 주겠다”며 재벌개혁과 관련해 잠시 숨 고르기를 하고 있었다.

김 위원장은 간담회에도 참석했다. 기업인들 입장에서는 불편한 자리가 아닐 수 없다. 문 대통령은 기업을 규제하겠다는 암묵적인 의사표시를 한 것으로 보인다. 격식 없는 자리를 보이겠다던 간담회가 불편한 자리로 변한 것이다.

결국 정부는 재계에 투자를 바라는 입장으로 간담회에 나섰고, 재계는 규제를 피하려 잘 보이기 위해 간담회에 나간 꼴이다. 결과적으로 상황은 알맹이 없는 빈 깡통이 됐다. 문재인 정부는 보다 실질적으로 기업에 다가갈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뉴스웨이 임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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