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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보험금 엎드려 절받기···소비자는 없었다

자살보험금 엎드려 절받기···소비자는 없었다

등록 2017.03.03 17:18

수정 2017.03.03 17:51

김아연

  기자

금감당국 중징계 결정에 전건·전액 지급키로

삼성·한화·교보생명 등 빅3 생명보험사들이 자살보험금 중징계 결정에 금융감독원의 권고대로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까지 모두 지급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는 금감원 징계 결정에 최고 경영자가 위기에 몰리고 나서야 입장을 바꾼 것으로 가입자와의 약속은 뒷전으로 밀렸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한화생명은 3일 오전 개최된 2017년 1분기 정기이사회에서 긴급안건으로 상정된 자살보험금 전액 지급안건을 의결했다. 총 지급규모는 이미 지급된 180억원 가량을 제외한 약 910억원(637건)으로 즉시 지급절차가 진행된다.

이는 전날 전액(1740억원) 지급을 결정한 삼성생명과 같은 결정으로 자살보험금을 줄 수 없다며 버티던 빅3 생보사 모두 결국 일부 지급에서 전건 또는 전액 지급으로 돌아서게 됐다.

◇자살보험금 못준다던 보험사들 급선회 이유 = 원칙적으로 자살은 보험금 지급을 허용할 경우 자살 및 보험사기를 부추길 수 있고 소멸시효가 지난 보험금은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대법원 판례에 따라 보험금을 줄 수 없다며 버티던 보험사들이 이처럼 지급으로 방향을 바꾼데는 금감원의 중징계가 결정적 영향을 줬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해 말 보험업법상 기초서류 준수 의무가 적용되는 2011년 1월을 시점으로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은 점을 근거로 삼성생명, 한화생명, 교보생명, 알리안츠생명 등에 보험사 영업정지부터 영업권 반납까지 징계가 가능하다는 제재 내용을 사전 통보한 바 있다. CEO 개인에 대해서는 문책경고부터 해임권고조치까지 가능하다고 적시됐다.

이에 알리안츠생명은 바로 전액지급으로 방향을 선회했고 교보생명은 일주일 뒤 2011년 1월 이후 청구건에 대해서만 일부 지급하겠다고 했다가 금감원의 입장이 변하지 않자 제재심의위원회가 열린 당일 오전 긴급하게 전건 지급을 결정했다. CEO 문책경고를 받으면 연임이 불가능하고 3년간 경영일선에서 물러나야 해 오너인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이 대표를 맡고 있는 교보생명의 경우 경영권 자체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교보생명은 제재심 이러한 대처로 삼성생명과 한화생명보다 한단계 낮은 영업정지 1개월과 CEO 주의적 경고를 받았다.

반면 제재심 당일까지도 2011년 이후 청구건에 대해서만 지급하겠다고 했던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에게는 각각 3개월과 2개월의 일부 영업정지와 CEO 문책경고가 내려졌다. 마지막까지 버티던 보험사들은 막상 고강도 제재가 내려오자 당황하기 시작했다.

특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 상태에서 연임이 확정된 김창수 삼성생명 사장까지 경영공백이 생길 수 있는 삼성생명이 가장 바빠졌다. 삼성그룹의 미래전략실 해체 이후 삼성전자·삼성물산·삼성생명 등 각 계열사 체제로 전환할 가능성이 큰 만큼 삼성생명 대표의 부재는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영업정지 제재로 인해 금융당국의 승인이 필요한 신사업 진출이 막히면 삼성화재 주식 매입 등이 어려워져 금융지주 전환에도 차질이 생긴다는 점도 발목을 잡았다. 삼성생명은 지난해까지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보험업법 상 계열사 투자한도 규정(자기자본의 -60% 또는 자산의 3% 중 적은 수준까지만 투자 가능)에 걸리지 않는 선에서 삼성카드, 삼성증권 등의 지분을 추가로 매입해왔다.

한화생명의 경우 임기 만료가 내년 3월인 차남규 사장의 연임 문제보다는 최근 핀테크와 해외진출 신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3년 동안신사업을 할 수 없다는 점이 막판 변수로 작용했다. 또 삼성생명이 전액 지급을 결정한 상황에서 홀로 버티는 것 자체가 부담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싸움서 이긴 금감원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아 = 금감원의 철퇴로 생보 빅3가 결국 완벽한 백기를 들게 됐지만 이번 자살보험금 사건에서 금감원 역시 책임론을 피할 수는 없다. 생보사들이 재해사망 특약 약관을 처음 만들 당시 일본 보험 상품 중 일반 사망을 보장하는 주계약 약관에 들어 있던 ‘2년 경과 후 자살’ 관련 문구를 그대로 들여왔고 카피상품들이 우후죽순 출시됐다는 점은 분명한 잘못이지만 이를 승인한 것은 금감원이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 자살은 보험금 지급을 허용할 경우 자살 및 보험사기를 부추길 수 있다는 점에서 보험금 지급 대상이 될 수 없다. 현행 상법 659조는 ‘계약자 또는 피보험자나 수익자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발생한 건의 경우 보험회사는 보험금을 지급할 책임이 없다’는 면책 규정을 담고 있다.

그럼에도 금감원은 2001년 당시 동아생명이(현 KDB생명) 상품의 표준약관을 검사한 뒤 그대로 승인했다. 또 이후 보험사들이 자살을 재해로 보는 것은 맞지 않고, 약관에 해당 내용을 넣은 것은 실수라며 2000년대 초반부터 금감원에 이를 수정할 것을 건의했을 때도 문제 삼지 않았다. 금감원은 2005년 자살보험금을 지급해달라는 소비자의 분쟁 신청에 금감원 산하 분쟁조정위원회가 소비자 손을 들어줬을 때도 이 약관의 오류를 놓쳐 2010년에서야 해당 약관을 수정했다. 금감원이 이를 바로잡기 전인 2009년까지 판매된 계약은 약 280만건에 달한다.

생명보험사 한 관계자는 “약관을 그대로 베낀 보험사들도 잘못이 있지만 이를 승인해 상품인가를 내주고 수정 건의에도 10년 가까이 아무 조치를 하지 않은 금감원도 문제가 있다”며 “금감원도 자살보험금 문제에 전혀 책임이 없다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다시 금감원에 넘어간 공···제재 수위 낮춰질까 = 보험업계는 두 회사가 늦게 결정하긴 했지만 전액 지급으로 방향을 바꾼 만큼 금감원장의 전결로 결정되는 문책경고와 영업정지와 과징금에 대해 최종적으로 결정할 금융위원회의 제재 수위도 낮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다른 보험사들과의 제재 형평성을 고려했을 때 기존에 결정했던 징계를 강행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급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전액 지급은 쉽지 않을 결정”이라며 “제재심 결과대로 제재가 확정된다면 다른 보험사들과의 형평성에서도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징계를 낮출 것”이라고 말했다.

이기욱 금융소비자연맹 사무처장은 “대형 보험사들이 소비자 신뢰 회복을 위한 것이 아닌 CEO와 주주 이익을 위해 마지못해 주는 모양새로 금융당국이 징계를 허술하게 한다면 기강이 잡히지 않고 이를 계속 이용할 가능성이 있다”며 “금융당국이 더 엄격하게 징계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금감원은 이번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의 전액 지급 결정에 제재심을 다시 여는 방안을 고려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책경고는 금감원장의 전결 사안이지만 자문기구인 제재심을 거치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에서다. 금감원이 제재심을 다시 열 경우 이달 22일로 예상됐던 금융위의 최종 결정은 더 미뤄질 전망이다.

뉴스웨이 김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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