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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그룹, 언제까지 정치 탓만 할 텐가

[정신차려 대한민국]대기업그룹, 언제까지 정치 탓만 할 텐가

등록 2017.02.01 09:04

수정 2017.02.01 13:18

정백현

  기자

세월 지나도 반성 없는 정치권기업에만 정경유착 책임 씌워투자·고용 지속 확대도 ‘헛수고’政·官, 재계 일에 관심 줄여야

국정조사 재벌총수 청문회. 사진=사진공동취재단국정조사 재벌총수 청문회.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우리나라의 기업은 2류, 행정 수준은 3류인데 정치 수준은 4류다.”
“(돈을) 안 주면 안 줬다고 패고 주면 줬다고 패는 상황에서 기업들은 중간에서 어떻게 할 수 없기 때문에 참담하기 그지없다.”

첫 번째 문장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지난 1995년 4월 중국 베이징에서 대한민국의 당시 현실을 언급했던 발언이다. 그리고 두 번째 문장은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이 지난 18일 고용노동부 장관 주관의 30대 그룹 CEO 간담회에서 뱉은 말이다.

위의 두 발언은 20여년의 시차를 두고 등장했지만 발언의 밑바탕에는 뼈 있는 의식이 공통적으로 깔려 있다. 우리나라의 저급한 정치 수준이 재계의 활동에 적잖은 장애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 회장의 ‘4류 정치’ 발언 이후 20여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정치권의 저급한 행동이 언급되는 비관적 현실이 21세기에도 되풀이되고 말았다. 지난해부터 현재까지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놓고 있는 ‘최순실 게이트’ 논란으로 인해 국내 유수의 대기업들이 가장 큰 피해를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 기업들은 그동안 국내외 곳곳에서 각종 제품과 기술을 통해 국부를 창출하고 세계 경제 시장에서 대한민국의 브랜드 파워를 높인 주역으로 꼽혔지만 이번 사태로 인해 단번에 ‘성장의 역군’에서 ‘비리의 원흉’으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이 때문에 재계 안팎에서는 오랫동안 계속 된 정치권의 수준 낮은 행동 때문에 오늘날 기업이 큰 상처를 받았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왜 기업만 반성해야 하나 = 지난해 10월부터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운영자금 출연 과정에서 대기업의 강제 출연 의혹이 불거지고 연이어 삼성이 최순실의 딸 정유라를 부당하게 지원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기업을 향한 국민의 반감은 크게 높아졌다.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와 특검 수사는 들끓던 국민의 감정에 기름을 부었다. 국회에서 기업인들이 뭇매를 맞는 사이 그동안 경제 발전을 위해서 뛰어왔던 기업에 대한 순기능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생존을 위해 정권에 돈을 바쳤다는 과오만 부각되고 말았다.

그 사이 기업과 기업인들은 수난을 당해야 했다. 특히 삼성은 지난해 11월 한 달 동안에만 세 차례나 압수수색을 받아야 했고 삼성 수뇌부는 줄줄이 검찰과 특검 조사를 받았다. 그리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18일 구속 위기에 몰렸다가 극적으로 구속을 모면했다.

다른 기업들도 사정당국의 수사 명단에 오르내리면서 혹시나 찾아올 지도 모르는 총수 부재의 공포에 떨어야 했다.

문제는 기업이 위축된 사이 정치권의 반성은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내려면 기업은 물론 정치권의 노력도 동반돼야 하지만 오로지 기업에게만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작태를 또 다시 반복하고 말았다.

지난해 12월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정치권과 재계가 유착하지 못하도록 법을 만들어 달라”고 말했던 것도 정치권이 정경유착 근절을 위해 기업과 함께 뛰어달라는 일종의 제스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정치권은 요지부동이었다.

◇‘밥값 못 했다’ 비판은 이제 그만 = 그동안 국내 대기업들은 오랫동안 사회 곳곳에 뿌리내린 ‘반(反)기업 정서’를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로 분골쇄신(粉骨碎身)해왔다.

시장 안팎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투자와 고용을 늘리고 벌어들인 이익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해 소외된 이웃들의 생활 보호를 위해 활용했으며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사업의 영향력을 크게 확장하면서 ‘경제부국 코리아’의 꿈을 키워왔다.

실제로 삼성전자와 현대·기아차, LG전자 등 다수 기업들이 각자의 업종에서 부지런히 뛴 덕분에 대한민국은 스마트폰, 반도체, 자동차, TV, 세탁기 등 다양한 제품의 판매량과 시장 점유율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세계의 소비자들에게 확실한 인상을 심어줬다.

그러나 이러한 재계의 노력에도 대중은 재계가 스스로의 사익 추구에만 골몰하고 일자리 창출에 있어서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면서 재계를 비판적으로 몰아갔다. 정부와 정치권은 이러한 움직임에 가장 앞줄에 있었다.

결국 정부와 정치권의 저급한 행동 탓에 우리 경제는 저성장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고용 절벽 현상 등을 필두로 한 서민 경제의 악화로 이어지고 말았다. 물론 이 상황에서도 정치권과 정부는 오로지 기업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재계 일각에서는 정부가 더 이상 기업의 일에 간섭하지 말고 대외적인 지원 활동에만 전념해주길 바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어느 대기업의 임원은 “기업으로서의 ‘밥값’을 충분히 하면서도 욕을 먹는 사례는 세계적으로 대한민국에만 존재할 것”이라면서 “양심이 있는 정부라면 기업 경영의 자율권을 보장하고 사업을 원활히 펴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에만 조용히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기업의 임원은 “바다를 잘 아는 사람이 배의 키를 잡아야 배가 순항하는 것처럼 시장을 잘 알고 있는 기업에게 모든 것을 일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면서 “정부가 기업의 일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구태는 오히려 기업을 병들게 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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