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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희 기자
등록 :
2016-11-22 08:27

[멈춰버린 한국]침몰 위기 한국號, ‘선장’이 없다

대혼란의 시기, 리더십 없는 정치권
‘식물’ 대통령과 분열된 집권여당
입으로만 ‘공조’…野 모래알 신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점입가경이다. 하룻밤 자고 나면 새로운 의혹이 쏟아져 나오면서 국정농단 사태는 쉽사리 수습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야말로 ‘난세’를 맞아 ‘군웅할거’의 조짐은 보이지만, 위기의 대한민국을 구할 확고한 리더십은 찾아보기 힘들다. 혼란이 장기화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간신히 연명 중인 朴정권, 사실상 ‘시한부’
지난달 말 ‘최순실 게이트’가 터져나온 이래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는 4년 동안 이어온 권력을 사실상 상실했다. 연설문 첨삭부터 인사권 전횡이 사실로 드러났고 이를 바탕으로 한 막대한 이권을 챙긴 정황도 포착됐다.

‘콘크리트’라던 30%대의 지지율 역대 대통령 최저치인 5%까지 내려갔다. 2030세대와 호남에서는 지지율 ‘0%’라는 모멸적인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을 비롯한 청와대 참모진과 내각 일부를 물갈이하면서 반전을 노렸으나 한 번 성난 국민 여론은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대국민 사과와 담화를 잇따라 내놓으며 민심을 달래고 분위기 환기를 꾀했으나 오히려 뜨거운 기름을 부은 듯한 역효과만 초래했다.

그러는 와중에 ‘비선실세’ 최씨, 기업 출연금 모집을 담당한 청와대 수석, 문화계를 쥐고 흔든 인사 등 관련자들은 줄줄이 구속되거나 검찰 조사를 받았다.

주말마다 열리는 도심 집회는 매주 규모가 늘어 급기야는 100만명을 넘어섰다. 이에 힘입은 야권은 연일 공세의 수위를 높이며 청와대와 여당을 압박하고 있다. 거의 모든 이들이 하야와 탄핵을 촉구하는 수준이 됐다.

상황이 이렇게 흐르면서 박 대통령은 자신이 강점을 보였던 ‘외치’에서도 힘을 쓰기 어렵게 됐다. 페루 리마에서 개최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도 박 대통령 대신 황교안 국무총리가 참석했다. 아시아·태평양 21개국이 참여하는 다자간 정상급 협의체로, 주요 20개국(G20)만큼이나 중요한 국제회의임에도 박 대통령이 직접 참석하지 못한 것이다.

이 같은 국정 공백은 박 대통령 스스로 자초한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사태 초기 확실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미봉책 수준의 방안을 제시하면서 더 큰 화를 불렀다. 책임총리 추천을 제안하고도 권한을 보장하지 않았고, 검찰조사 수용 의지를 나타낸 뒤 몸을 사렸다.

◇움직이는 잠룡들…차기대권 ‘춘추전국’
차기 대선을 1년여 앞둔 시점에서 여야의 잠재적 대선후보들은 일제히 대응에 나섰다.

여론의 추이를 살피며 숨죽이던 이들 중 가장 먼저 박 대통령의 하야를 공식 요구하며 나선 것은 이재명 성남시장이다. 지난달 29일 ‘박근혜 하야 촛불집회’에 참석한 그는 연단에 올라 “박 대통령은 탄핵이 아니라 사퇴해야 한다”며 “노동자가 아니라 대리인이기 때문에 해고해도 된다”고 말해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나아가 이 시장은 현행 중앙집권체제 대신 지방분권형 권력체계를 주장하기도 했다.

야권 내 또 다른 잠룡인 박원순 서울시장도 성명을 통해 “박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의 권위와 신뢰를 잃었다”며 “경제위기, 민생도탄, 남북관계위기 등을 ‘식물대통령’에 맡겨둘 수 없다”고 치고 나섰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공동대표는 최근 대학가 등을 돌며 박근혜 퇴진 서명운동을 벌이는 등 활발한 장외투쟁에 들어갔다. 그간 지나치게 신중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던 안 전 대표는 현장에서 시민·학생들과 만나 의견을 청취하는 등 적극성을 과시하는 모습이다.

반면 안희정 충남지사와 김부겸 의원, 문재인 전 대표 등은 비교적 조용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다수가 퇴진을 외치는 분위기 속에 이성적인 면모를 부각시켜 중도 성향의 유권자들을 겨냥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다만 문 전 대표는 뒤늦게 퇴진촉구 행렬에 동참했다.

여권에서도 비박계를 중심으로 폭탄발언이 이어지고 있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박 대통령은 하야하지 않을 것이 확실시되는데 무슨 방법이 있겠나”라며 “이 사안을 놓고 할 수 있는 건 탄핵 뿐”이라고 강조했다. 유승민 의원과 원희룡 제주지사도 각각 “모든 것을 내려놓고 결단하라”, “배신을 당했다”고 날선 반응을 나타냈다.

김 전 대표와 유 의원, 원 지사와 더불어 남경필 경기지사, 오세훈 전 서울시장, 정병국 의원 등 대권주자급 인사들과 4선이상 중진들은 비상시국회의를 결성하고 박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퇴진을 요구했다.

장외 유력주자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당초 새누리당 친박계의 지원 속에 대권 도전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으나 이번 사태로 인해 관망세로 돌아선 모습이다. 그는 원론적인 입장표명 외에는 말을 아끼면서 국내 정치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與 쪼개지고 野 공조 ‘흔들’
정치권이 분주하게 돌아가고 다양한 인사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음에도 좀처럼 여론을 한 번에 이끌만한 리더십이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여야를 망라해 어느 인사도 여론의 요구를 100% 담아낼 능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다. 온도차를 두고 현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을 뿐 이후 상황에 대한 확실하고 분명한 비전을 제시한 이가 없는 것이 그 방증이다.

뿐만 아니라 현재 졸속 우려에 휩싸인 내년도 예산안 심사와 무기한 연기되고 있는 각종 법안 처리 등에 대해 해법을 내놓거나 의지를 표명한 이도 아직까진 없다. 저마다 정치적 실익을 따지면서 행동하고 발언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렇다 보니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여론과 신속한 국정 정상화를 바라는 여론 어느 쪽도 만족시키지 못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개별 인사가 아닌 정당 차원으로 보더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진상규명 및 대책 마련은 고사하고 반성의 기미조차 보이지 못한 채 양갈래로 나뉘어 대립하고 있다. 비박계가 지도부 퇴진을 요구하는 데 대해 친박계는 당을 나가라는 엄포를 놓으며 맞서는 모양새다.

정치적 ‘호재’를 맞은 야권 역시 각 당의 이해관계가 조금씩 엇갈린다. 겉으론 공조 체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잡음이 끊이지 않는 것이 그 근거다. 정국 주도권을 둘러싼 보이지 않는 경쟁도 치열하다.

결국 최순실 사태로 인한 국정 공백이 장기화하는 만큼 새로운 리더십의 출현도 길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여권의 한 초선의원은 “정치적으로 중대한 시기인 만큼 정당과 인사들이 모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며 “대선이 가까워지면 저마다 주장하는 내용이 쏟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창희 기자 allnew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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