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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백현 기자
등록 :
2016-03-02 08:57

허울좋은 경제민주화…시장만 왜곡

규제개혁은 안 해주고 투자·고용만 강요
신사업 아이템 넘쳐 나지만 꽃도 못 피워
“돈 팍팍 쓰고 싶어도 환경이 뒷받침 안 돼”
기업 성장 못하면 경제민주화도 의미 없어
상생도 좋지만 경쟁력 강화 고민해야

경제민주화 정책의 주적(主敵)으로 몰렸던 대기업들이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대중은 부(富)의 불평등을 심화시켰다며 기업들을 나무랐고 정부는 규제 혁파 없이 기업들의 대대적 투자와 고용을 강권했다. 그 사이 기업들의 성장 곡선은 아래쪽으로 꺾이고 말았다.

경제민주화의 실현, 특히 부의 평등 구현을 위해 대기업이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미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를 겪었을 당시 ‘재벌 해체론’이 등장했을 정도로 대기업 개혁에 대한 대중의 외침은 꽤 오래 된 이야기다.

그러나 현재 재계의 분위기는 과거 ‘재벌 해체론’이 등장하던 시대보다 나쁘면 나빴지 좋아졌다고 볼 수 없을 만큼 냉랭하다. 기업 주변의 규제는 오히려 더 강화됐고 정부는 물론 시민단체 등 제3세력의 간섭은 더욱 심해졌기 때문이다.

◇당근 없이 채찍만 때리는 정부=다수의 재계 관계자들은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경영하기가 더 힘들어졌다”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경제민주화라는 미명 하에 간섭의 정도가 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국내 기업들이 특별한 투자 없이 사내유보금을 쌓는 일에만 급급하다며 기업들에게 투자를 종용하고 있다. 사내유보금을 현금화하고 특히 이중의 다량을 내수 시장에 투자해 장기화된 내수 불황을 해결해보자는 것이 정부의 목소리였다.

실제로 기업의 사내유보금은 최근 5년 사이 크게 늘었다. 김현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내 1835개 상장사를 대상으로 투자 규모와 사내유보금을 조사한 결과 2008년 112조4000억원이던 연간 투자 규모가 2014년에는 112조2000억원으로 0.17%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사내유보금은 326조원이었던 것이 845조원으로 519조원(158.6%) 정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 역시 투자 규모가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크게 늘지 못했다. 때문에 정부 입장에서는 기업이 투자보다 곳간 늘리기에만 더 집중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재계의 목소리는 다르다. 경제민주화 정책 기조 강화만을 외치는 정부와 제3세력의 간섭이 심해지면서 제대로 된 투자가 이뤄지지 못하다보니 사내유보금이 계속 쌓이게 됐다는 것이 재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투자할 돈이 있다면 당연히 투자를 하겠지만 돈이 생겨도 적재적소에 쓸 수 없게끔 정부가 기업을 옭아매고 있기 때문에 투자를 제대로 못하는 것”이라며 “곳곳에 쌓인 규제들을 해결하지 않고서 기업이 공격적으로 투자하기는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거미줄 규제에 꽃 못 피우는 신사 =최근 몇 년간 국내외 곳곳에서는 3D 프린터와 드론, 메디컬 푸드 등 기존 산업의 프레임을 깨는 미래형 신사업 모델이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각종 규제 탓에 이같은 신사업이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다.

재계는 신사업의 발전을 방해하고 있는 규제가 다른 나라와의 미래 사업 경쟁에서 뒤처지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돼 우리 경제의 미래 성장에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1월 발표한 ‘신사업의 장벽, 규제 트라이앵글과 개선과제’에 따르면 사전규제와 포지티브 규제, 규제 인프라 부재 등 세 가지 규제의 장벽이 신사업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됐다.

상의는 이같은 세 가지 규제 장벽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신사업이 총 6개 부문 40개 사업에 이른다고 밝혔다. 대표적으로 3D 프린터는 안전성 인증기준이 없어 판로 개척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의료용 스마트폰 앱은 까다로운 허가 절차를 거쳐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문제는 각종 규제 때문에 신사업이 꽃을 못 피우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정부가 이를 해결하려고 선뜻 나서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미국과 캐나다 등은 자율주행 자동차 운행기준을 마련해 상용화 허용 수순을 밟고 있고 일본은 드론 택배를 허용하는 등 무인산업 육성을 위해 바삐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규제 개혁의 행보가 불확실하거나 미온적이다.

김태윤 한양대 교수는 “규제 개혁에 나서지 않는 것은 글로벌 경쟁 현장에서 뛰는 기업의 손발을 묶는 격”이라며 “시장 선점 경쟁에는 시간이 생명인 만큼 국회는 행정규제기본법 개정안을 조속히 통과시키고 정부도 재계의 건의사항을 신속 조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업 때리기는 경제 근간 훼손 행위=재계 입장에서 볼 때 최근 재계 안팎의 상황은 매우 비관적이다. 그럼에도 재계는 경제민주화 구현을 위한 일방적 희생을 요구하는 정부와 제3세력을 향해 공개적으로 쓴소리를 못하고 있다. 후폭풍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개적인 불만 표출을 못할 뿐 잠재적으로는 기업의 일방적 희생과 정부의 냉랭한 태도에 대해서는 심각한 우려를 보내고 있다. 정부가 기업을 때리는 것은 경제 평등의 수단이 아니라 우리 경제의 근간을 위협하는 행위임을 기업 스스로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 대기업의 고위 관계자는 “기업은 국가 경제의 심장과도 같으며 기업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우리 경제의 성장도 장담할 수 없다”며 “기업이 온전한 환경에서 제대로 성장하려면 정부가 도와줘야 하지만 우리 정부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른 나라는 국가 경쟁력을 올리기 위해 기업들을 상대로 여러 혜택을 지원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기업 중에 정부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기업은 사실상 없다”며 “정부 때문에 기업이 흔들린다면 이는 국가 위신과도 연관되는 재앙”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기업의 관계자는 “동반성장만을 강조하는 이상한 정책 탓에 과잉 규제가 생겨났고 이 때문에 국내 기업의 수익성이 날로 악화되고 있다”며 “강자를 윽박지르는 방향이 아닌 모두가 함께 공존하는 방향으로 경제 정책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백현 기자 andrew.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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