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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에 빠진 재계, 열공 또 열공

인문학에 빠진 재계, 열공 또 열공

등록 2015.04.20 07:59

수정 2015.04.20 08:00

정백현

  기자

재계 안팎서 “경제 사회 주체는 사람” 인식 기조 확산주요 그룹 공채 인적성검사 인문학 관련 문항 늘어나정몽구·정용진 등 총수들도 입모아 ‘인문학 중흥’ 강조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재계 내에서 가장 돋보이는 인문학 마니아다. 그는 대학가에서 인문학 관련 강의에 나설 정도로 인문학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이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정 부회장이 연세대학교에서 인문학 관련 특강을 진행하는 모습. 사진=신세계그룹 제공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재계 내에서 가장 돋보이는 인문학 마니아다. 그는 대학가에서 인문학 관련 강의에 나설 정도로 인문학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이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정 부회장이 연세대학교에서 인문학 관련 특강을 진행하는 모습. 사진=신세계그룹 제공

재계가 인문학 공부에 푹 빠졌다. 경제와 사회를 움직이는 주체가 돈이 아닌 사람이 먼저라고 생각하는 기조가 확산되면서 인문학에 대한 재계의 관심이 커졌기 때문이다. 신입사원 공채 과정에서는 물론 최고위급 사장들까지 인문학 열공 신드롬은 끊이지 않고 있다.

재계에서 가장 돋보이는 인문학 마니아는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다. 자타공인 ‘인문학 전도사’로 명망이 높은 정 부회장은 최근 기업 CEO 외에 인문학 강사라는 타이틀도 붙었다. 그는 연세대와 고려대에서 다수의 청중을 모아놓고 인문학 강의를 하기도 했다.

정 부회장은 평소 “유통업의 미래는 시장점유율보다 소비자의 일상을 점유하는 라이프셰어를 높이는데 달려있다”며 “신세계그룹은 인간에 대한 이해를 통해 사람이 중심이 되는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고자 한다”는 뜻을 수차례에 걸쳐 강조해왔다.

정 부회장은 국내 인문학 전파를 위해 써달라며 매년 20억원씩 지원하며 ‘한국의 메디치 가문’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재계 각 기업은 인문학적 소양이 높은 인재를 고르기 위해 신입사원 공채 과정에서도 인문학적인 요소를 크게 강조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공채 과정의 실질적 첫 관문인 지필형 인·적성검사의 변화다.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 등 재계 주요 기업의 지필형 인·적성검사 문항을 보면 국내외 역사나 상식 수준 등을 묻는 문항이 과거에 비해 훨씬 많아졌다. 역사 지식이 풍부하고 인문학적 상식이 많은 사람을 중용하겠다는 그룹 고위층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다.

삼성그룹이 올해 상반기까지만 학점 3.0 이상과 영어회화시험 점수만 있으면 응시자격이 주어지는 삼성직무적성검사(SSAT)의 경우 상식 영역에서 역사·세계사 문항이 30% 이상의 비중을 차지했다. 지난 12일에 치러진 상반기 SSAT에서도 이같은 기조는 계속 됐다.

2013년부터 진행된 현대차그룹의 HMAT는 역사 에세이 문항이 있다. 그동안 ‘저평가된 위인을 재조명하라’나 ‘몽골과 로마제국의 성장사를 보고 글로벌 기업의 성장방안을 서술하라’는 등의 문제가 등장했다. 아무리 달필이라도 역사를 모르면 시도조차 못하는 문항들이다.

LG그룹도 지난해 하반기부터 LG웨이핏 테스트에 한국사와 한자 문제를 각각 10개씩 출제해왔고 GS그룹은 신입사원 공채 과정에서 한국사능력검사를 따로 둘 정도로 인문학적 소양을 강조하고 있다.

정용진 부회장이 이끄는 신세계그룹은 인문학 인재를 중점적으로 선발하기 위해 지난해 신입사원 공채부터 스펙 위주의 평가를 지양하고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 ‘드림 스테이지’ 면접을 도입했다.

드림 스테이지는 지원자의 출신 학교와 학과, 나이 등의 개인정보를 면접관에게 일체 제공하지 않고 직무 연계성과 경험으로만 집중 평가하는 신개념 인재 채용 제도다.

이들 기업은 최종 면접을 통과한 뒤에도 신입사원 연수 등을 통해 역사 강의나 토론식 학습 회의를 진행하는 등 인문학적 소양 쌓기에 주력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인문학적 소양 쌓기 작업은 사원증을 목에 걸었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일반 직원은 물론 계열사 사장이 돼서도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국내외 주요 계열사 전 직원들을 대상으로 ‘역사 콘서트’라는 이름으로 사내 역사 강의를 진행해왔다. 여기에는 정몽구 회장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돼 있다. 정 회장은 “역사관이 뚜렷한 사람이 회사와 나라를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을 수차례 해온 바 있다.

삼성그룹은 매주 수요일마다 계열사 사장들이 사회 안팎 현안에 대해 공부를 한다. 법정공휴일과 휴가 기간이 아닌 이상 매주 수요일 오전에 열리는 사장단 협의회 강의가 바로 그것이다. 2013년보다는 비중이 줄었지만 인문학과 연관 학문 관련 강의는 여전히 삼성 사장단 협의회 강의에서 적잖은 비중을 차지한다.

지난해 강의에서는 교황의 공감 리더십(차동엽 천주교 인천교구 신부), 세종대왕의 리더십(박현모 세종리더십연구소장), 사람과 삶(신영복 성공회대 교수), 21세기 중동과 이슬람 문명(이희수 한양대 교수) 등 인문학과 경영학의 조화를 이루는 주제가 적잖게 등장해 삼성 계열사 사장에게 큰 교훈을 심어줬다.

재계 한 관계자는 “사회 변화가 빨라지면서 인류 사회의 기본인 인문학 학습을 통해 기업의 지속적 성장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기조가 재계 안팎에서 커지고 있다”며 “미래 인재부터 현재를 이끄는 CEO까지 모두가 인문학적 소양을 키우는 일은 당연한 일”이라고 분석했다.

정백현 기자 andrew.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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