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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의 실패 하이닉스 껴안은 SK 선택은 옳았다

10년의 실패 하이닉스 껴안은 SK 선택은 옳았다

등록 2013.08.26 06:16

민철

  기자

SK하이닉스는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수많은 시련을 겪어야 했다.

SK하이닉스의 모태는 지난 1949년 설립된 국도건설(주)이다. 현대그룹은 1983년 반도체산업에 진출하면서 국도건설을 인수했고 이름을 현대전자산업(주)으로 바꿨다. 현대전자산업이 1986년 반도체연구소를 세웠고 1995년에는 세계 최초로 256Mb SD램을 개발에 나서면서 반도체 기업으로 재탄생했다.

그러던 중 김대중 정부 시절 5대 그룹의 계열사의 ‘빅딜(대규모 사업교환)’을 추진하면서 현대전자산업은 1999년 LG반도체를 흡수 합병, 이후 2001년 3월 ㈜하이닉스 반도체로 사명을 변경했다.

같은 해 7월 현대전자산업이 반도체 가격 하락 등의 여파로 경영난에 빠지면서 결국 현대그룹이 채권단에 하이닉스반도체에 대한 경영권 포기 각서를 냈다. 현대그룹으로부터 분리되면서 하이닉스의 10년간 방황이 시작된다.

하이닉스는 마이크론의 인수 시도로 시작돼 매년 M&A 시장의 매물로 떠돌았다. 과도한 차입금에 발목이 잡힌 하이닉스는 2001년 1조9000억원의 적자를 내며 부도 위기에 내몰려 직원의 절반 정도인 1만명을 감축하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했다.

핵심인 메모리반도체를 제외한 모든 사업을 국내외 업체들에게 내다 팔았고, 시장의 부침에 쉽게 흔들리는 메모리만으로 줄타기를 해야 하는 상황에 대한 우려도 컸다. 지난 2007년에는 반도체 시장 위축으로 위기를 맞은 하이닉스는 또다시 임직원 30%를 감원하는 등 뼈를 깎는 아픔을 수차례 겪기도 했다.

지난 2008년과 2009년 5000억원의 신규자금지원과 약 1조원의 유상증자 실시로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기도 했다. 하이닉스가 정상 기업으로 회복됐다고 판단한 채권단은 2009년 9월 마침내 새 주인을 찾기 위해 채권단 지분의 매각 절차를 밟았다.

이로 인해 효성그룹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MB(이명박 대통령) 사돈기업’이라는 특혜 시비에 휘말리면서 첫번째 M&A는 무산됐다. 채권단은 2010년 1월 2차 매각을 시도했지만 인수 의사를 밝힌 기업이 나타나지 않아 또 다시 실패하고 말았다.

인수를 희망하는 기업 찾기는 쉽지 않았다. 3조원이 넘는 큰 인수금액이 첫번째 문제지만, 최악의 ‘반도체 시황’ 속에서 매년 수 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돈을 투자해야 하는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방황하고 있던 하이닉스 인수자로 STX와 현대중공업 등이 거론됐다가 결국 2011년 11월 SK텔레콤이 단독 입찰에 나서면서 승부수를 띄웠다. SK그룹의 단독 입찰 참여로 결국 하이닉스는 SK그룹의 품으로 안기게 됐고 이듬해 SK하이닉스로 사명을 바꾸고 새롭게 출범했다.

이로써 주력사업인 통신사업과 정유에서 성장 한계를 느끼고 있던 SK그룹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반도체를 택함에 따라 SK는 통신서비스, 정유, 반도체 3가지 축으로 그룹 미래를 그리게 됐다.

지난해 3월 출범식에서 최태원 회장은 “SK이노베이션과 SK텔레콤 이상으로 도약하는 SK하이닉스를 꿈꿀 것”이라며 “세계 일류 반도체 기업으로 거듭나서 국가 경제와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행복을 나누는 SK하이닉스를 만들어 가겠다”고 포부를 밝힌 바 있다.

민철 기자 tamados@

뉴스웨이 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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