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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애 사라진 ‘정몽헌 10주기’ 단상

[기자수첩]형제애 사라진 ‘정몽헌 10주기’ 단상

등록 2013.08.05 16:46

수정 2013.08.05 16:53

정백현

  기자

형제애 사라진 ‘정몽헌 10주기’ 단상 기사의 사진

‘포니 정’이란 애칭을 가진 고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은 2000년 ‘미래는 만드는 것이다’라는 자서전을 남겼다.

이 책에는 ‘현대’ 브랜드 탄생의 전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특히 ‘현대’ 브랜드 발전의 역사 부분에는 매 에피소드마다 ‘큰형님’이라는 이름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여기서 말하는 ‘큰형님’은 아산 정주영 현대 창업주(이하 아산)를 뜻한다.

책 속의 아산 형제는 경영 과정에서 종종 갈등을 일으켰다. 현대차서비스 설립, 전국 딜러십 구축, 현대차 전주공장 운영권 이관, 현대차 회장 퇴진 논란 등이 아산과 정세영 명예회장 간 대표적 의견 갈등 사례다. 이들 갈등에서 이긴 사람은 ‘장자 파워’를 지닌 아산이었다.

자서전 끝부분에서 정세영 명예회장은 “사업에 대한 내 생각과 큰형님의 의중은 처음부터 적잖은 괴리가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큰형님은 내게 부모님 이상의 사랑과 용기를 주신 고마운 분”이라며 “남은 생을 큰형님의 은혜에 보답하며 살겠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2001년 3월 아산이 세상을 떠났을 때 정세영 명예회장은 형님의 영정 앞에서 대성통곡했다. 회사 안에서는 여러 번 대립각을 세웠지만 회사 밖에서는 우애를 기반으로 자신을 보살펴 준 형님의 죽음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갈등도 더러 있었지만 회사 안팎에서 의기투합하며 ‘현대’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운 아산 형제의 끈끈한 형제애는 재계에서 손꼽히는 형제 경영인의 모범사례 중 하나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아버지 세대의 형제애가 대를 잇지는 못하는 것 같다. 지난 4일은 고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의 10번째 기일이었다. 기일을 맞아 하남시 창우동 선영은 오랜만에 북적였다.

기일 이틀 전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현대그룹 임직원들이 이곳을 찾아 참배했다. 그러나 현 회장의 참배 전후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정몽근 현대백화점그룹 명예회장,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 정몽윤 현대해상 회장 등 정 전 회장 형제들의 모습은 일절 보이지 않았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정 전 회장의 기일이라고 해서 현대차그룹이나 현대중공업그룹, 현대백화점그룹이 따로 조화를 보낸 경우는 없었다”며 “‘범 현대가’로 묶이는 각개 기업인들의 참배까지 상관하기는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공사다망한 공인으로서 공무과 사무를 구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가족의 기념일, 특히 안타깝게 세상을 등진 동생과 형의 기일을 형제들이 일제히 나몰라라 했다는 점은 여러 번 생각해도 심히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약 정몽구 회장이나 정몽준 의원이 잠시 사업과 정치 일을 제쳐두고 스스로 정몽헌 전 회장의 묘소를 참배했다면 개인은 물론 해당 기업의 이미지도 한결 좋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 기업 역사에서 유독 재벌가의 형제 관계는 대부분 좋지 못했다. 삼성가 형제(이맹희-이건희)와 현대가 형제(정몽구-정몽헌), 한진가 형제(조양호-조남호), 롯데가 형제(신격호-신준호) 등이 그렇다. 유력 기업인들의 잇단 불화 때문에 대기업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더욱 차가워졌다.

기자는 국민들의 기업 정서 개선을 위해서라도 기업인들이 조금 더 인간적인 움직임을 보여줬으면 하는 희망을 품어본다. 욕심을 줄이고 서로를 이해하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인간미를 스스로 보여준다면 우리 기업을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은 더 부드러워지지 않을까.

정백현 기자 andrew.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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