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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회장의 젊은 소통법 “사람이 미래다”

SNS 회장의 젊은 소통법 “사람이 미래다”

등록 2013.08.05 07:00

이주현

  기자

[CEO리포트]‘M&A의 귀재’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

M&A·해외시장 개척통해 맥주 등 소비재 그룹에서
산업재 글로벌기업 변신 매출 8배 성장 혁신열매
끊임없는 소통의 리더십 트위터 팔로워만 16만명
소탈한 성격에 유머감각 만우절회식 문자 유명세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 / 사진=두산그룹 제공박용만 두산그룹 회장 / 사진=두산그룹 제공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이 공석중인 대한상공회의소(이하 상의) 회장으로 공식 추대됐다. 이로써 박 회장은 아버지인 고 박병두 초대 회장과 형인 박용성 전 회장에 이어 상의 회장을 맡게 됐다.

박 회장의 상의 회장 추대는 일찌감치 예견됐다. 경영 능력을 검증받은 데다 신망까지 두터워 중소·중견기업과 대기업을 아우르는 종합경제단체인 상의 수장으로 적임자라는 이유에서다.

재계에서 박 회장은 전문경영인을 능가하는 실무 능력을 갖춘 오너 기업인으로 손꼽힌다.

지난해 4월 두산 회장에 취임하기 전까지 바닥부터 실무를 익혔다. 1982년 두산건설에 사원으로 입사해 두산음료 동양맥주 (주)두산 두산인프라코어 등을 두루 거치면서 경험을 쌓았다.

박 회장의 경영 능력이 빛을 발한 것은 1990년대 중반 IMF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그룹의 구조조정과 인수합병을 진두지휘하면서다. 그는 오비맥주 등 주력 사업을 과감히 매각하면서 그룹 체질을 혁신적으로 바꿨다.

또 ▲2001년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2005년 대우종합기계(두산인프라코어) ▲2006년 영국 미쓰이밥콕(두산밥콕) ▲2007년 미국 밥캣(두산인프라코어인터내셔널) ▲2009년 체코 스코다파워(두산스코다파워) 등 1998년부터 17건의 인수합병(M&A)을 성사시켰다.

이를 통해 두산은 맥주 등 소비재에서 중공업·기계 등 산업재 중심 기업으로 변신할 수 있었다. 10%대 초반이던 해외 매출 비중은 60%대로 높아져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매출도 급성장했다. 지난 2011년 기준으로 매출은 지난 1998년 3조400억 원대 보다 8배 가량 증가한 26조2000억 원을 찍었다. 해외 매출도 10% 초반에서 40% 수준으로 끌어올리며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면모를 갖췄다.

M&A와 해외사업 개척을 통해 두산그룹이 전 세계 30개국에 걸쳐 3만9000여명이 일하는 10대 그룹에 오르기까지 가장 큰 역할을 한 박 회장이었다.

형님들이 수장 자리를 물려주기까지 박 회장은 특유의 추진력으로 두산그룹을 정상화시키며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한 것이다.

재계에서는 이런 박 회장이 이번엔 글로벌 경기불황과 경제민주화 등으로 위기에 빠진 한국경제를 정상궤도로 올리데 제 역할을 해낼 수 있을지에 주목하고 있다.

재계는 두산의 체질을 변화시켜 글로벌 경영을 추진해온 박 회장의 역량에 비춰볼 때 ‘준비된 50대 재계 수장’으로 한국 산업계가 처한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수완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M&A로 공격적 경영을 펼쳐온 박 회장이지만 그룹 회장이 된 뒤에는 내실 위주로 그룹을 이끌었다. 두산인프라코어의 5억 달러 영구채 발행 등 선제 구조조정으로 계열사 재무구조를 안정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특히 박 회장은 두산그룹을 이끌면서 ‘소통’과 ‘혁신’을 강조해온 만큼 경제민주화 바람이 불고 있는 재계에서 ‘소통 리더십’을 통해 긍정적인 변화를 주도할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보여주기식 소통이 아닌 진솔하고 친근한 모습의 소통에 힘써왔다. 대기업 오너 회장이라는 권위를 벗어던지고 임직원들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적극적인 소통을 하고 있다.

트위터 팔로워가 무려 16만 명에 이를 정도며 박 회장은 트위터를 통해 사적인 의견, 깨알 같은 일상 등을 공개해 ‘재벌기업인’에 대한 선입견을 허물었다.

트위터 이외에도 박 회장의 소탈한 성격을 보여주는 일화는 다양하다. 박 회장은 소주와 막걸리를 즐기고 젊은 사원들과도 스스럼없이 저녁 자리를 갖는 편이다.

SBS 연예프로그램 ‘짝’에 출연했지만 파트너를 찾는 데 실패했던 자사 직원을 저녁 식사에 초대해 입소문을 타기도 했다.

SNS 회장의 젊은 소통법 “사람이 미래다” 기사의 사진


또한 평소 유머를 즐기는 박 회장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2011년 만우절 때 있었던 문자사건 이었다.

박 회장은 당일 아침 7시 그룹 임원에게 뜬금없이 “왜 안 와? 우리 먼저 식사한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낸 후 당황한 임원이 “오늘 조찬 모임이 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는데 죄송하다”고 답장을 보내자 “만우절특별조찬”이라고 위트를 날려 상대를 진땀 빼게 했다.

박 회장의 소통은 트위터와 사내 뿐 아니라 적극적인 대회활동을 통해서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2000년 한-스페인 경제협력위원장 회장, 2009년 서울상공회의소 부회장, 2011년 한국스페셜올림픽위원회 이사 등을 맡은 이후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이 외에도 마리아수녀회 한국 후원회장, 국림오페라단 후원회장 등도 맡고 있다.

현장경영 활동에 주력한 박 회장은 ‘사람이 미래다’라는 광고 카피를 직접 쓸 정도로 인재를 중요시 했다. 매년 대학 기업설명회에 참석해 인재를 구하고 직원들을 위한 음악콘서트를 마련해 자신이 직접 사회를 맡는 등 재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했다.

두산이 내부적으로 상무 전무 부사장 등 직급을 없애고 점수에 따라 일등부터 꼴찌까지 줄을 세우는 인사 제도를 폐지할 수 있었던 것도 박 회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런 박 회장이 대한상의 회장으로 취임함에 따라 상의는 무거운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회원사뿐만 아니라 국민에게 한층 가까워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 프로필>
▲경기고,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미국보스턴대 경영학 석사 ▲1982년 두산건설입사 ▲1995년 두산그룹 기획조정실 부사장 ▲1998년 두산 대표이사 사장 ▲2005년 두산 대표이사 부회장 ▲2007년 두산인프라코어 회장(現) ▲2009년 두산중공업, 두산건설 회장(現) ▲2009년 두산 대표이사 회장(現) ▲2012년 두산그룹 회장·두산 이사회 의장(現)
이주현 기자 jhjh13@

뉴스웨이 이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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