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령 등의 혐의로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는 최태원 SK 회장이 무죄를 입증할 회심의 증거를 제출했지만 오히려 재판부의 불신만 키우는 화근이 됐다.
2일 열린 항소심 공판에서 서울고법 형사4부(재판장 문용선 부장판사)는 최 회장 측이 지난달 28일 공판에서 제출한 김원홍 전 SK해운 고문과 이번 사건 당사자인 최 회장, 최재원 SK 수석부회장, 김준홍 전 베넥스인베스트먼트 대표 등의 통화내용이 기록된 녹취록을 탄핵증거로 채택했다.
탄핵증거는 피고인 등의 진술의 증명력을 다투기 위한 증거를 말한다. 즉 최 회장 측은 녹취록에 기록된 대화 내용을 통해 최 회장이 이번 사건 펀드자금 인출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입증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녹취록의 내용을 믿기 힘들다며 신뢰를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녹취록을 만든 당사자가 김 전 고문이라는 점에서도 강한 불신을 나타냈다.
재판부는 “본인(김원홍)은 떳떳하게 재판에 나오지도 않으면서 갑자기 이런 녹취록을 만들어 보냈다”며 “김원홍이 나와서 녹음 경위 등을 원만하게 밝히지 않으면 가사 녹음 내용이 맞더라도 이 재판에는 맞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김 전 고문이 갑자기 녹취록을 보내온 것이 이번 사건이 수사 단계부터 항소심에 이르기까지 김 전 고문의 전략에 따라 진행되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항소심 재판의 핵심 증인이었던 김준홍 전 대표 증언도 의심받고 있다. 김 전 대표가 김 전 고문의 재판 전략에 따라 입장을 달리하는 듯 하면서도 최 회장 입장에 맞춰 진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많은 시간 김준홍 피고인을 심문했는데 잠정적으로 최태원 피고인 측과 내통해서 교묘하게 증언한다는 인상을 준다”며 “마치 최태원 피고인에게 조금 불리한 듯 진술을 하면서도 깊게 파고들면 최태원 측 주장에서 한발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이런 증거(녹취록)들로 최초의 전략을 세웠는데 안 통해서 기소되고 최재원 피고인이 죄를 뒤집어쓰는 1심 재판 전략이 안 통해서 유죄되고 항소심에서 전략을 또 바꿨지만 통하지 않자 새로운 전략으로 이런 증거물을 내게 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추궁했다.
재판부는 또 “검사도 재판장의 시각도 기본적인 면에서 김준홍 피고인이 최태원 피고인의 입장에 맞춰 교묘하게 허위 진술을 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 회장 측으로서는 펀드자금 인출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할 회심의 카드로 녹취록을 제출했지만 오히려 재판부의 불신만 키우는 역풍이 된 것이다.
한편 최 회장 측이 제출한 녹취록에는 이번 사건이 김 전 대표의 단독범행이라는 내용의 대화가 담겨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강길홍 기자 slize@
뉴스웨이 강길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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